* 성적인 함유가 다분합니다. 열람 주의. 

 

집무실에서는 오늘도 듣기 싫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지난 몇 년간 그랬듯이 1월이면 주인의 혼을 쏙 빼놓는 소리가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주인은 그 리듬에 맞춰서 딸깍딸깍 서류를 결재했다. 그 소리 좀 어떻게 꺼줄 수 없어? 이 혼마루에 인간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것만 백여 입인데 그걸로 모자라서 그걸 굳이 스테레오로 들어야겠어? 금발의 청년은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사건의 전모야 별것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단 이틀 라이브 행사를 하고, 일주일만 녹화 아카이브를 공개하던 게임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2주 간격으로 다섯 날씩이나 라이브를 하고 아카이브를 열흘이나 풀어줬다는 게 문제였다.

 

평소에도 그쪽 노래 많이 듣잖아. 항상 틀어놓고 살잖아. 그걸로 부족해서 지금 이렇게 틀어놓고, 누구 속 터지게 할 일이라도 있어? 당장에라도 따지고 싶지만 어떡하겠는가. 저렇게 좋다고 할 땐 놔두어야 소심한 복수가 일어나지 않는걸. 코류 카게미츠는 근시로서 할 일을 하면서 주인을 그대로 둔 지 20일쯤이 지나자 슬슬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코에서 소득이 따로 없었네.

항상 소득이 있으면 자기, 복권에라도 당첨될 운을 끌어다 쓴 걸걸.

어쩔 수 없지. 코류한테 빨리 찻잔 하나 선물해 주고 싶은데.

아하하, 그건 듣던 중 고마운 소리야.

 

저 소리만 아니라면 말이지. 어느새 아카이브는 흐르고 흘러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간까지 재생되어 있었다. 가챠! 힘찬 목소리와 함께 주인의 손가락이 다시 까딱까딱 움직였다.

 

나 잠깐만 상점가에 나갔다 올게.

, 다녀와.

주인은 코류를 선선히 내보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어라?

 

주인은 집무실에 없었다. 대충 이쯤이면 분큐 토사번에 보낸 도검들의 현황을 점검하느라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집무실에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잠깐 산책이라도 갔나? 코류 카게미츠는 상점가에서 사온 조그마한 꽃다발을 들고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카이브 소리가 꺼져 있었다. 그렇다면 주인은 집무실에서 나갔다는 뜻이다.

 

헤에, 이거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내가 돌아온 자리에 없다 이거지.

 

코류 카게미츠는 성큼성큼 자기의 방으로 향했다. 주인의 별채 옆에 딱 붙어 있는 호신도의 특실. 그곳에서 주인을 놀래킬 요량이었다.

 

흐흥~~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웬일인지 집무실을 일찍 비워버린 주인이 꽤 기꺼웠다. 오늘은 어지간히 급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더 이상 일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니 오랜만에 독점해도 되겠는걸. 그는 잰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덜컥.

덜컥.

덜컥-.

 

방의 문이 안에서부터 잠겨 있었다. 이게 뭐람? 코류 카게미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문을 잠그고 나왔나? 아닌데. 나 오늘 주인 방에서 잤는데. 그럼 누가 이 문을 안에서 잠갔다는 뜻인데 누구지? 생각풍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럴 땐 방법이 있지.

 

코류 카게미츠는 머리카락을 고정한 핀을 하나 땄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문고리인 만큼 대충 몇 번 쑤시면 열릴 터였다. , , . 캠핑으로 다져진 손재주로 몇 번 열쇠구멍을 찌르자 탁,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어느 도둑놈인지 얼굴이나 보자, 코류는 기세등등하게 문을 열었다.

 

자기가거기서나와?

 

코류는 벙 찐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와중에 자기라고 불린 그의 주인이자 연인은 자기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상점가에 갔다가 얼마만에 올 줄 알고 이런 깜찍한 짓을.

 

맥이 탁 풀렸다. 어느 도둑놈은 어느 도둑놈이야, 네 심장 도둑놈이지, 라고 말하듯이 은빛의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니, 똑바로 쳐다본 건 상관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당당한 시선이 좋았던 거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거, 내 옷, 아냐?

 

얼떨떨하니 코류는 주인이 입고 있는 옷을 자각하자마자 한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툭 떨어뜨렸다. 아무리 체격차가 있기로서니 이렇게 시선을 자극적으로 유인하는 옷차림이 될 수 있는 옷이었단 말인가? 물론 저 옷을 입고 주인을 꼬신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주인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당황스러워요, ‘허니’? 요즘 우리 허니가 좀 불만이 많은 것 같아서 준비해봤어.

 

유독 허니, 라는 말에 힘을 주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되새기는 주인의 얼굴을, 아니 푹 파인 가슴께를 보기 힘들었던 코류 카게미츠는 자기도 모르게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오늘은 정말로 내일 아침 집무 시간까지 놔주지 않으리라.

 

잘 먹겠습니다, 라고 인사하면 되는 거지?

글쎄에?

 

일부러 늘려 말하면서 입꼬리를 히죽이는 것이 마음의 준비는 이미 된 것이렷다. 코류 카게미츠는 떨어뜨린 꽃다발을 주워다 주인의 품에 안겼다.

 

오늘은 곱게 안 재울 거야.

어디 한 번 해보든가, 대포 씨.

그래놓고 맨날 기절하면서, 도발하는 거예요? 어쨌든, 고마워.

 

코류 카게미츠는 주인의 허리를 한 팔로 휘어잡았다. 언제라도 이런 도발이라면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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