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사서가 깨어나지 않는 침대 너머를 보며 전생한 문호는 빈 병을 던져버렸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사서실은 깨진 유리들이 자잘하게 밟혀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게 난장판이었다. 사서가 깨어나지 않은 지 일 주일이 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배짱 좋게 그 같은 불량 청년을 일하게 만들었던 여자는 도무지 눈을 뜰 줄 몰랐다. 자신이 지었던 시 구절을 읊다가, 원 없이 술을 마시다가, 사서가 지난날의 부끄러운  줄글이라 말했던 빨간 책들을 뒤적이다가 술병을 던져버리는 날들만이 계속되었다.


과로라고 했다. 과로였으면 충분히 쉬었으니 일어나라고. 전생한 혼에 육체를 입혀 다시금 살아 움직이게 만든 순간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이 꿈은 아닐런지, 끔이라면 왜 깨지 읺는 건지. 시상을 읊다가 종이를 펼쳤다가 펜을 들었다가 술병을 들었다가 글씨를 쓰다가 마시던 것을 멈추다가. 날이 밝고 어둠이 닥치는 것을 일곱 번 보았으니 일곱 밤이 지난 채였건만 사서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카하라 츄야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기댔다. 젠장할, 시인이라는 것이 괴로운 줄은 진작에 알았건만 지금 이 상황은 좀이 쑤셔 못 견딜 뿐이었다.


아직도 자냐.


하얀 커텐을 잡아당기는 손이 떨린다. 술 없이는 못 사는 자신을 몸으로 직접 제압하는 여자를 만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책은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뿐이었는데 이 빌어먹을 여자는 자신을 사서라고 소개해 놓고는 문호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자신을 무력으로 진압하곤 했다. 배급하듯 술의 양을 정해놓고 주질 않나, 주사를 부리면 질질 끌고 사서실에 처박은 뒤 문을 잠가버리질 않나, 일하기 싫다며 몸을 배배 꼬는 자신을 술 몇 병으로 꼬드겨 정신적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책 속의 요괴 놈들과 대면하게 하질 않나. 이래저래 사나운 고양이 같이 구는 것들마저 뼈에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서 몰래 바깥에 나가 포장마차에서 퍼 먹는 술보다 사서의 잔소리 없이 양껏 마셔대는 고급진 술이 맛이 없었다. 


괴롭다. 작은 채구의 불량한 청년은 한방울도 아깝다는 모양새로 술병 끝을 핥았다. 알싸한 단내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입술에 남은 술의 향기를 혀끝으로 훑어 남김없이 마시면서도 그는 하얀 커튼 아래 시체처럼 일어날 줄 모르는 상대방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불량스럽게 날선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를 전생시켜 깨웠으면, 다시금 시상을 읊게 만들었으면 너를 부리던 그 자들도 너를 전생시켜줘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카하라 츄야는 사서실을 걸어잠근 뒤 처음으로 얌전히 술병을 내려놓았다.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자신의 중절모와 사서의 미니햇이 서러웠다. 시상이 오르지 않는다. 갑작스런 상실감이 자아낸 형편없는 세상에선 자신도 시를 노래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사서는 평범하지 않았다. 특무사서라는 직위야 갖다붙이면 그만이지만 하얗게 쳐진 눈매 속에서 반짝이는 눈에는 어딘자 모를 지독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내 알 수 없이 죽어벌,ㄴ 눈빛을 보며 나카하라 츄야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살아서 다 마셔보지 못했던 술들의 종류를 탐닉하고 시를 읊고, 전투만큼은 귀찮지만 책 속에 빠져들어 책을 먹어피워버리는 빌어먹을 트라우마 덩어리들을 상대했던 새로운 삶이 짜릿하기도 했다. 그렇기 찾아온 즐거움이 가져다 준 고독은 지독한 담배연기처럼 심장에 들러붙어 있었다.


권태롭구마안... 죽음도 가까운 모양이네.


다시 마주하기조차 싫은 술맛 떨어지게 만드는 침식자들을 볼 때마다 입었던 정신적인 상해의 기운이 온 몸을 스멀스멀 침식하고 있었다. 그래, 나카하라 츄야는 알고 있었다. 사서는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순간적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미려한 경치조차 시상이 되지 못하는 상해를 입고 돌아올 때마다 다른 일을 팽개쳐두고 자신을 침대에 뉘인 뒤 인형도 안겨 주고 괜찮다며 침대 맡에 앉아 노래를 불러주던 사서는 이제 없었다. 


두통이 몰려왔다. 더럽게 짜증나는 두통이었다. 슬슬 다시 돌아갈 때라도 된 모양이구만. 나카하라 츄야는 사서가 잠든 하얀 침대 시트 속으로 들어갔다. 간혹 함께 쓰던 것인지라 비좁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시체가 주는 공포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피가 돌지 않는 몸을 더듬어 차게 식은 손을 붙들었다. 끊임없이 마신 술 탓인지 붙잡는 손이 떨려왔다. 덜컹,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지는 것처럼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잘 자라, 다시 깨어나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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