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상냥한 입술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너의 따뜻한 눈가에서 흘러서는 안 될 것이 흘러내린다.

너의 고운 손에 들지 않았어야 할 짐이 들린다.

너의 모든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 오늘은 그런 날이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결국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날. 그런 날이다. 물기 젖은 목소리로 자정에 하루에 시작을 알리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슬퍼했을 날. 그리고, 이제는 부디 그 슬픔 위로 반석 같은 기쁨을 쌓아 가기를 바라는 밤.

 

별채 안에 모셔진 그 위패가 누구의 것인지 아는 이는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도요 이치몬지가 쉬이 입에 올리지 않는 일.

산쵸모조차도 조언을 삼가는 일.

혼마루의 그 어느 누구도 떠들썩하게 굴 수 없는 이유.

 

사니와는 때때로 불안정했다. 해마다 5월 말이 되면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쉽게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다쳐오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며 출진조차 거부하던 때도 있었으니 차라리 지금은 양반이다, 라고 몇몇 도검남사들이 입에 올렸었다. 적어도 지금은 출진은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나 뭐라나.

 

사실 도요 이치몬지는 슬쩍 찔러보고 싶었다. 취임일이라면, 응당 그에 어울리는 연회와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적어도 사사키 도요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에게는 이토록 조용하게 기념일을 보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색한 일이었다.

 

달링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보군?”

 

그것도 모르고 쉽게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끄러미 묻는 듯한 산쵸모의 눈이 유독 붉게 타는 것 같았다. 작은 새는 치기에 그럴 수 있다지만, 너답지 않은 처사 아니냐며 힐난하는 듯 붉은 광채가 돌았다.

 

무슨 일이 있었든 아내다.”

무를 생각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형제여도, 그때는 참을 수 없을 것 같군.”

계속 뜸들일 생각인가?”

작은 새로부터 직접 듣는 편이 이롭지 않나.”

습관이지. 손에 든 패는 많을수록 좋다는.”

 

당장에라도 미간에서 핏줄이 터져나갈 기세로 산쵸모의 이마가 꿈틀했던 그날의 서늘함. 수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침착하게 분노한 형제의 모습에서 위압감이 느껴진 것은 그로서는 처음인 경험이었다.

 

작은 새에게는.

 

산쵸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먼지 한 톨마저 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공중에 멈춰 버린 것만 같은 감각이 몸을 타고 흘렀다. 어째서인지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이 그를 덮쳤었다.

 

. 그렇게 되었다.

 

짧고 간결하게 설명은 끝났다. 평소답지 않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겁 많은 듯이 구는, 히스테릭한 그 모습에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된 도요 이치몬지의 결심은 다른 방향으로 굳었지만.

 

.”

 

올해도 아내는 굳게 입을 다물고 위패를 모신다. 여명을 자신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버린 옛 연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쓸어보는 은빛의 눈에서 투명하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릴 것처럼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색채라고는 분홍빛의 머리카락뿐인 상복 차림으로 향을 한 조각 올리는 그 모습은 지금의 남편들을 두고도 옛 연인을 생각하느냐?’는 상스러운 질문 따위 할 수 없을 만큼 경건했다.

 

옛 연인, 생명의 은인, 그리고 엇갈린 명운.

그 안에서 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했을까.

 

산쵸모도, 도요 이치몬지도 검은색 일색으로 차려입고 아내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생각하는 바는 달랐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보다 격식 있게 주인으로 부르게 되었지만, 사석에선 여전히 작은 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나의 사랑하는 작은 새에게 씻기 힘든 이별의 상흔을 남긴 당신을, 조금은 원망한다. 하지만 감사할 수밖에 없기도 하겠군. 그 시절의 작은 새를 지켜낸 것은 당신의 마음일 것이니.’

 

나는 당신에게 감사해야겠지. 하지만 역시 조금은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아내에게 남긴 상처를, 온전히 애정으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멋대로 나를 아내의 비즈니스에 끼워 넣은 당시의 선택은 옳아.’

 

당신에게 말할 게 있어요.”

 

는 향을 피우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장에라도 흘러넘칠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절규할 것만 같은 심정을 꾹꾹 눌러담은, 형언할 수 없는 목소리. 도요 이치몬지도, 산쵸모도 당장 영원의 숨이 끊어질 때쯤에나 들을 법한 목소리로.

 

과분한 사랑이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청자가 누구인지 또렷하지 않은 것만 같은 말이 이어졌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살고 있어요. 고마워요. 언제까지나.”

 

에게도, ‘도요 이치몬지에게도, ‘산쵸모에게도 전하고 싶은 진심을 담았다는 것이 느껴지기에, 두 도검남사는 멈칫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시계는 연인의 죽음으로 멈춘다.

누군가 억지로 시계를 돌리려고 해도 관성처럼 그 시간에 멈춰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두 도검남사는 영겁의 시간을 돌아 태엽을 돌리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을 행복하게 살게.”

 

제문이 끝났다.

* * *

 

한 잔, 두 잔, 석 잔. 연회장이 떠나가라 시끄러웠다. 그녀 나름의 서프라이즈. 식신들과 카센 카네사다, 그리고 히메츠루 이치몬지가 최근 상당히 분주하다 싶었더니 이런 놀라움을 준비했을 줄이야. 츠루마루 쿠니나가조차 얼빠진 표정으로 연회장 한 번, 주인 한 번을 쳐다보곤 진심이냐고 물을 정도의 연회가 벌어졌다.

 

본성의 여주인은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았지만.

 

. 우리에게도 비밀로 하다니, 너무하구나.”

 

산쵸모가 슬쩍 몸을 숙여 주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연회의 주인공은 나름대로의 변명을 찾으려 눈알을 도로록 굴리다가 그의 뺨에 짧게 키스하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다른 도검남사들과도 무알콜 샴페인 잔을 나누었다.

 

놀랍군. 아주 놀라워.”

 

도요 이치몬지의 약간은 씁쓸하고 허탈한 표정이 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향목으로 캠프파이어라도 준비할 걸 그랬다며 완전히 당했다는 얼굴을 하는 그의 얼굴을 본 히메츠루 이치몬지가 승리의 브이를 그리고는 무표정으로 지나갔다.

 

오히메까지 동원해서 이렇게 했단 말이지.”

 

분명히 연회장이니까 즐겁게 잔을 받으면서도 도요 이치몬지와 산쵸모는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놀라게 했으면 그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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