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분 사니와

# 덴님 키워드 줘서 고마어여 + 나기사 자꾸 캐붕내는 거 같아 미안해여 ..(._,

# 여전히 삽질 중 


제 전화번호가 맞다고 시키지도 않은 배달을 보내고, 쪽지까지 곱게 써 보낸 상대방이 자신이 거는 전화를 씹어먹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기사는 잇몸을 까득 깨물었다. 이런 엿 같은 일이 또 있으랴. 지갑 한 번 놓고 왔다가 자신이 대체 무슨 쪽을 당하는 건지 나기사로서는 어이가 저 멀리 가출할 일이었다. 미남과의 로맨스 같은 거야 망상으로나 즐겁지, 실제로는 로맨스도 뭣도 아닌 놀리는 짓뿐이라고 단정지은 나기사는 그냥 봐도 나 화 났소, 하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대충 비집어 넣었다.


쾅쾅 구두굽이라도 망가뜨릴 것처럼 나기사는 발을 구르며 사무실로 내려왔다. 기분이 뭐 같으니 일도 제대로 안 풀렸다. 모니터에 뜬 검은 것은 꺼진 불이오, 흰 것은 켜진 불일지니 뭐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기사 씨, 잠깐 좀 봐요.


설상가상으로 팀장까지 착 가라앉아선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나기사를 불렀다. 제가 작업한 서류 중 하나에 0 한 글자가 대차게 빠져 있었다. 순간 그녀는 아득한 하늘 너머의 할머니가 인사하는 것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야근을 하는 자신이 그 위에 겹쳐졌다. ‘혼마루라는 다소 낯설고도 낯익은 카페의 칙칙한 초록색 점장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따지고 보면 빌어먹을 그 자식 때문에 오늘 이 꼴이 난 것이라고. 상사의 잔소리를 들으며 나기사는 속으로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결국 나기사는 오늘도 야근 멤버가 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회사 근처에서 홧김에 제일 비싼 메뉴를 시켰는데 하필이면 젓가락 장식이 동박새 무늬였다. 씨발. 나기사는 대체 왜 자신을 놀리는 그놈의 카페 사장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늦게 나온 만큼 음식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맛있었지만 나기사의 입 속에서는 모래와 자갈만 굴러다녔다. 제가 무슨 정신으로 밥을 먹고 나왔는지도, 중간에 어느 카페에 들러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커피를 들고 있는지도 나기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그 빌어먹을 카페 점장 자식이 거슬린다는 것뿐이었다.


야근을 하다 어깨가 뻐근해진 나기사는 회사 건물 앞마당의 자판기 앞에 섰다. 동전을 두어 개 꺼내 밀어넣었다. 쨍그랑 한 푼, 쨍그랑 두 푼. 마음이 심란하니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모를 동요를 우울하게 흥얼거리던 나기사는 고민을 시작했다. 밀크 티 캔과 오렌지 주스 캔을 보던 그녀는 결국 양 손 검지를 들었다.


이왕이면 주스로 마셔요.


들리지 않아야 할 목소리에 놀란 나기사는 손이 미끄러져 밀크 티도, 오렌지 주스도 아닌 알로에 음료를 선택해버렸다. 자신을 놀라게 한 사람에 대한 짜증도가 이만큼 올라가 나기사는 한껏 볼을 부풀리곤 홱 얼굴을 돌렸다.


새하얀 와이셔츠, 곱게 묶인 고급스러운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은 본 적도 없는데? 나기사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회사에 들어온 뒤 한 번도 굴리지 않은 속도로 머리를 굴리려니 골이 아팠다. 이러니저러니 행동으로 사람을 돌게 만들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싫지 않은 사람이었다.


당신


좋아하지도 않는, 오히려 남이 줘도 싫다며 돌려보내고 싶어지는 알로에 음료를 쥔 나기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기사는 상대방에게 알로에 주스 캔을 던지듯이 떠넘겼다.


, 그거나 마셔요.

, 고마워요.


잠시 뜸을 들인 남자는 예쁘게 눈을 접어 웃었다. 밤이어서 다행이야. 나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저리도 해사하고 어여쁜 얼굴이던가. 그야말로 30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코앞에서 보는 상대방은 예뻤다.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동그란 예쁜 눈과 마주하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풍성하고 긴 속눈썹은 남자의 눈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바빴어요. 혼자 있는 카페인데 주문이 밀려서. 미안해요.

아하하, 그럴 수도 있죠.


* * * * *


미츠타다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주워섬기는 제 사촌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몇 백 년, 아니 곧 천 년을 살아 온 자의 연륜이란 저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절레절레. 사실 우구이스마루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보고 있었다.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휘파람새의 영롱한 눈 속에 잠겨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들만이 아는 것이었다.


* * * * *


화를 내듯이 알로에 음료를 안겨준 나기사는 그의 휴대전화를 받았다. 잔상처 하나 나지 않은 전화를 보는 눈에 신기함이라는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사람의 표정이란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우구이스마루는 묵묵히 상대방이 눌러 준 전화번호를 보았다. 그가 일부러 받지 않았던 그 전화번호였다. 나기사. 언제 보아도 기분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우구이스마루는 웃었다. 상대방의 휴대전화는 꽤나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성격대로 화끈한 건가. 달랑이는 예쁜 휴대폰걸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예쁜 장식이네요.


휴대전화는 돌려주지 않고 만지작거리던 우구이스마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나기사는 손목시계를 보곤 표정을 찌푸렸다.


가야 해요?


미묘한 표정을 짓는 나기사를 한 번 본 우구이스마루는 제 이름은 빈 칸으로 두고 휴대전화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곤 미련 없이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우구이스마루는 알고 있었다. 나기사는 오늘 연락을 해 올 것이 분명했다.


* * * * *


나기사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꺼내놓고 램프가 반짝이는지 계속해서 눈여겨보았다. 서류를 점검하던 나기사는 깜박거리는 램프가 반가웠다.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고 문자를 열었다.


[언제 끝나요? 끝나면 커피 한 잔 할까요?]

[오늘은 늦었으니까 다음에 갈게요.]

[느긋할 때 와.]


해석하기에 따라 중의적인 말을 담은 상대방의 문자를 받고 나기사는 잠깐 이마를 짚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기사는 상대방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 썩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는데. 갸우뚱, 고운 포니테일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에이, 모르겠다. 차차 알아나가면 되겠지. 나기사는 다시 눈앞의 업무에 집중했다. 한 십 분 정도 더 하면 끝날 것 같은 양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굳이 답장을 보내지 않고 찾아가도 되겠지. 나기사는 키보드 위에 얹은 손을 재게 놀렸다.


나기사는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도 모르고 일에 집중했다. 다 끝냈다- 빌어먹을 상사의 메일에 메일을 보내고 나서 시계를 보니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엄청 집중했나보네, . 역시 나야!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거울을 본 나기사는 바깥을 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나기사는 바깥 날씨와 제 코트를 번갈아 보았다. 하늘에서 흩뿌리는 것처럼 수없이 날리는 눈발을 그대로 맞고 돌아갔다간 내일의 자신에게 과거의 자신에 대한 욕을 옴팡지게 할 것 같아 나기사는 탕비실을 뒤졌다. 우산이 없었다. , 젠장. 어떡하지. 고민하던 나기사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켰다.


[눈 오네요. 우산 있어?]


삼십 분 전쯤 온 문자였다.

그로부터.


나기사는 창문에 기대 카페가 있는 곳을 보았다.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혼자 하는 카페라고 했으니까 그는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맞고 가야죠.]


자신이 보아도 무덤덤한 말투로 나기사는 문자를 보냈다. 일 분 쯤 지나서 손 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다려요. 짧게 한 마디만 달랑 온 문자를 본 그녀는 가방을 정리했다. 집에 가져갈 것, 혹시라도 젖으면 안 될 것, 다시는 빼놓지 않을 지갑. 빠뜨린 것 없이 가방과 소지품을 모두 확인한 나기사는 사무실 불을 끄고 현관으로 내려갔다. 을씨년스럽게 어두운 건물은 당장에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그녀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건물 앞에 선 나기사를 향해 꽤 큰 인영이 다가왔다.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한 손에는 여느 때처럼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선이 살아 있는 도톰한 트렌치코트 위로 잘 어울리는 목도리를 둘러맨 그는 성장(盛裝)한 신사처럼 보였다.


들어요.


남자는 그녀에게 컵을 내밀었다. 따끈한 종이컵의 촉감에 얼어버렸던 나기사의 손이 꼭 녹았다. 장갑 안 가져왔어요? 상대방이 묻는 물음에 나기사는 순순히 대답했다. 아침에 따뜻했거든요. 하긴, 그랬네요. 무심히도 말한 남자는 한 손으로 제 목에 두르고 있던 도톰한 목도리를 풀어 온갖 바람을 맞고 있던 목을 감싸주었다.


감기 들어요.


상냥하게 말하는 상대방에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 말고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평소의 나기사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그야말로 두고두고 놀려먹을 일이었다. 그는 얌전히 나기사를 에스코트하며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잘 들어가.


열차를 타는 것까지 확인한 그는 우산도, 목도리도 받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나기사는 한 손엔 우산을, 한 손엔 아직도 따뜻한 커피를 든 채로 빈 좌석이 많은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열심히 문자를 쳤다.


[우산이랑 목도리, 안 가져가요?]

[다음에 줘요. 감기 들지 마세요.]


얇은 옷차림으로 그렇게 간 당신이 더 감기에 걸릴 것 같다고, 문자를 입력하던 나기사는 황급히 모든 글을 지우고 감사합니다, 내일 가져다 드릴게요. 한 마디만 남겼다. 그는 나기사가 덕분에 잘 들어왔어요, 답변을 보낼 때까지 정답게 답변을 남겨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기사의 손에 들려 있는 커피는 그 추운 날씨에도 식지 않고 따뜻했다. 홀짝, 잠이 오지 않는 밤 나기사의 손끝에 이어진 휴대전화에는 잘 자요, 보내지지 않은 문자 끝의 커서가 깜박였다. 여전히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는 커피처럼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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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 ㅋㅋㅋ ㅋㅋㅋㅋ 저질렀다 덴님 사랑해 나기사 캐붕 미안해요

# 전편은 여기


    나기사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켰다. 지갑 속에 들어있던 메모를 보며 연락을 할까, 말까 수도 없이 망설였다. 침대에 앉아 의욕적으로 안녕하세요, 아까 지갑 감사합니다. 문자를 작성하다가 애써 지웠다. 분명히 장난일 거야. 이 번호도 장난이면 어떡하지, 다시 물어볼까? 아니,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려나? 으으으, 혼자서 실컷 땅을 파다가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몬드처럼 생긴 예쁜 눈을 보며 흐흠, 하긴 내가 좀 예쁘긴 하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나기사는 결국 문자를 보내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도 될 것이다. 급하면 먼저 물어보겠지, 라는 마음을 담아서.


    다음날 아침에도 나기사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조금 일찍 출발해서 카페 앞을 지나가려니 거진 오픈 준비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어제 꽤 늦게 들어갔을 텐데, 저 사람.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며 지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안쪽에서도 바깥 상황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카운터 옆에 놓인 자신의 휴대전화를 손에 넣고 흔들며 왜 전화 안 했어요?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며 방긋 웃어보인다. 나기사의 등골이 바짝 섰다. 고양이처럼 펄쩍 뛴 그녀는 후다닥, 도망치듯이 회사로 향했다. 어떡하면 좋아, 나 코 꿰였어, 점심시간에 갈 다른 카페 어디 없나.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지도를 띄워 놓고 회사 근처의 카페를 검색했다.


? 뭐 해?


    검색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기사에게 동료가 물어왔다. 대답 없이 카페 검색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니터를 보던 동료는 나기사를 놀리기 시작했다.


요즘 자주 가던 카페는? 거기 점장 엄청 미남이던데.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

이야, 무슨 일 있나보다. 그치?

그런 거 아니야.

그런 표정으로 이야기하면 신뢰가 하나도 안 간답니다?

아니라고!

. . 무슨 일인데. 점장이랑 무슨 일 있었지? 뭐 쏟았어?


    한참 수다거리가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자꾸만 추궁해오듯 물어보는 동료들에게 버럭 짜증을 낼 즈음이었다. 똑똑, 배달 왔습니다. 누구 뭐 시켰어? 서로 돌아보며 나는 아닌데, 나도 아니야. 웅성웅성 시킨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로 상당한 거구의 미남이 등장했다. 제멋대로 뻗친 것처럼 보이지만 공들였음이 한눈에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하얀 피부가 빛나는 외모는 그의 건장한 체격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그 아래에서 촛불처럼 빛나는 눈이 자신이 찾는 대상의 이름을 올리지만 않았다면 조각상 같은 모습을 보다 감상할 수 있었으리라.


나기사라는 분 안 계십니까.

?

, 그쪽 숙녀분이신가요. 제 쪽에서도 부탁을 받아서.


    나기사는 이윽고 한 손에 진한 녹차라떼를, 다른 손에 냅킨 한 뭉치를 받았다.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당연히, 오늘 아침 쫓기듯 도망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참동안 거기에서만 사먹은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 배달 같은 거 시킨 적 없는데요.

계산은 됐습니다. 그냥 가져다주라고.


    원치 않게 시선이 자신에게 주목된 것을 느낀 나기사는 이 남자를 되돌려보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가고 나면 어떻게든 자신에게 몰려올 질문 공세를 피하려면 잠깐이라도 머무는 시간을 줄여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한 마디로 인사를 마친 나기사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화 왜 안 했어요?


맨 위의 냅킨에 작게 쓰인 글씨가 나기사의 머릿속을 한 번 푹 찔렀다.


010 xxxx xxxx 맞아요.


양심을 향해 두 번을,


이따 와요.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심장을 향해 세 번.


    도합 세 장의 냅킨으로 마음을 콕콕 찔린, 아니 마음이 푹푹 파인 나기사는 먹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애물단지처럼 녹차라떼를 보고 있었다. 뜨겁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미지근하지도 않은 딱 맛있는 나기사가 마실 수 있는 온도는 컵을 볼 때마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한 카페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아아악, 젠장!!!! 포니테일로 곱게 올려 묶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나기사는 되도 않는 성질을 부리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신나게 내뱉었다. 진짜 환장해 버리겠네. 웬 미친개한테 단단히 물린 거 아닌가, 싶다가도 미묘하게 그 쪽에 신경이 곤두서는 걸 어떻게 풀어낼 수가 없었다. 나기사는 결국 휴대전화만 들고 몇 층을 뛰어올라 옥상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 * * * *


    미츠타다는 카페 주인인 사촌형을 보며 태연한 척을 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간만에 생각나서 들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도 않던 음료 배달을 시키지 않나, 거기다 상대로 보이는 사람이 여자였으며 냅킨에 쪽지까지 써서 보내 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녀왔어?’ 한 마디만 묻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도대체가. 미츠타다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만둬버렸다. 사촌형과 그 여자의 일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간섭은 꼴사납잖아, 라는 생각으로.


꽤나 한산해. 그냥 시간 때우는 거지. 우리들의 삶이 좀 심심하긴 하잖나. 처음 카페를 개업하며 우구이스마루가 했던 말이었다. 한참 그렇게 사람들과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지내던 그의 카페는 어느 순간부터 매일같이 열려 있었다. 미츠타다는 궁금했지만 굳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간만에 찾아온 카페는 정갈하고 고요했다. 바 일을 마치고 잠깐 쉬다가 브런치나 먹고 갈까, 싶어 들렀던 미츠타다는 제 사촌형이 핸드폰을 흔들며 바깥을 향해 활짝 웃는 것을 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했다. 나무 뒤에 가려져 있어 그가 활짝 웃는 상대편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먹은 건 내가 치워야지. 미츠타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뒤로 걸어갔다. 앞치마를 동여매고 유리 그릇을 윤이 나도록 반질반질 닦는 내내 우구이스마루는 시집을 보다가, 핸드폰을 보다가 평소보다 부산했다. 미츠타다는 그가 연락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간파했다.


    결국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리던 우구이스마루는 벽에 걸린 예쁜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였다. 진한 녹차라떼에 에스프레소 샷을 평소보다 공들여 추출하고, 혼합하고, 보기만 해도 폭신하고 고소한 향의 우유 크림을 위에 한껏 올렸다. 우구이스마루는 냅킨 몇 장에 뭐라뭐라 끄적거리는 것을 보고 있던 미츠타다를 향해 음료 한 잔과 냅킨 한 뭉치를 건넸다.


미츠타다. 이것 좀 배달해줘.


    배달도 했었어?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입을 다물고 시집으로 눈을 돌려버린 우구이스마루의 관심을 더 끌 수는 없었다. 놀러 왔다가 졸지에 배달원이 된 미츠타다는 우구이스마루가 알려 준 화사를 찾아가 음료를 배달했고, 아몬드 모양의 보랏빛 눈이 반짝거리는 예쁘장한 아가씨를 마주했다.


, 우웅.


    기다리던 그 연락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구이스마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구이스마루는 처음 보는 전화번호를 보곤 빙긋,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 , . 상식을 뛰어넘는 제 사촌의 행동에 미츠타다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 궁금해서 못 견딜 거야.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상큼하게 대답한 우구이스마루를 뒤로하고 미츠타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그 아가씨, 누군지 몰라도 아주 코가 꿰였다 싶었. 불쌍하기도 하지. 

# 지인분 오리지널 사니와 有

# 슷게한 캐붕을 주의해주세요


그 아이는 어디까지 갔을까. 손님이 없는 시간, 머그컵을 닦아 윤을 내던 남자는 물끄러미 바깥을 보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근처에 있는 회사의 사원 출입증으로 보이는 파란 끈을 목에 매달고 당당한 걸음으로 아슬아슬한 시간에 그의 카페에 와선 항상 같은 음료를 시키는 여자. 우구이스마루는 앙증맞게 생긴 지갑을 보며 그 아이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녹차 프라푸치노에 샷 추가, 휘핑크림 적당히, 통 자바칩을 올려서. 그녀는 한 달 내내 그 음료만 시켰던 것 같다. 우구이스마루는 길고 가는, 적당히 마디가 져 있는 손끝으로 지갑을 톡톡 두드리다 카운터의 포스기 바로 옆에 두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아이니까 곧 오겠지. 설마 지갑을 잊어버린 것도 깜박하겠어, 라는 심정으로. 오늘 얼마나 시달렸으면, 싶은 마음도 담아서.


* * * * *


나기사는 평소처럼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돌아왔다. 달고 시원하고 깊은 맛의 녹차 프라푸치노는 카페 직원(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일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기에)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의 색이었다. 왠지 그 사람 녹차만 먹어도 살 것 같아. 녹차의 요정인가, 싶을 정도로, 나기사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양에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반짝이는 휘핑크림을 한 입 떠먹고는 그래, 이 맛이지! 장난기 가득한 행복감을 느끼며 웃었다.


?


자리에 앉은 나기사는 이상함을 느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손이 허전했다. 분명히 카페에 갈 때도 한 손만 비어있었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한 손이 비어 있었다. 머리를 팽팽 돌리던 그는 잊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이 멍청아! 스스로의 정신없음을 탓했지만 어쩌랴. 이미 놓고 온 것을.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시간은 채 1분도 남아있지 않았고. 회사 동료들은 이미 다 돌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문자를 넣을 핸드폰도 없었다. 집에다 두고 와서 아침에도 한바탕 한 것이 떠올랐다. 정말 되는 일이 없는 하루였다.


* * * * *


카페는 한산했다. 뽀득뽀득 윤이 나게 닦은 그릇들을 제자리에 밀어넣고 우구이스마루는 근처의 직장인들이 모두 회사 안으로 사라진 짧은 시간을 티타임으로 활용했다. 맑은 녹차가 오늘따라 더 깊은 맛을 자랑했다. 손을 뻗어 지갑을 쓸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지갑과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갑을 열어보았다. 나기사.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부르기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구이스마루는 지갑을 곱게 닫곤 원래 두었던 자리에 다시 놓았다.


예쁜 이름이구나.

어떤 이일까.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의 카페가 있는 곳은 높디높은 빌딩들이 가득한 동네였다. 어엿하게 카페를 운영하면서 우구이스마루는 많은 수의 손님과 깔끔하게 비즈니스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리를 두었다. 여태 그녀와도 자주 얼굴을 마주했지만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시계를 보던 그녀와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좀 더 챙겨주던 그만 있었을 뿐.


때가 되면 오겠지.


지갑은 자꾸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구이스마루는 잠깐 고개를 쳐들었던 호기심을 녹차 한 잔에 모두 우려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 * * * *


안절부절 못하는 나기사의 표정을 팀장은 재미있게 쳐다보았다.


뭘 봐 이 새끼야 사람 불안한 거 처음 보냐.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지거리를 억지로 누르고 있자니 일은 진도가 안 나가고, 카페에 있을 것이 확실한 지갑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거기다 서류는 왜 또 쌓여 있는지 한숨만 푹푹 쉬던 나기사는 자신이 어떻게 서류를 마치고 퇴근길에 나오기 시작한지도 몰랐다. 아주 미쳐 버리겠네 진짜. 내가 어쩌다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질렀더라. 신경질을 내며 일회용 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그녀는 씩씩대며 카페로 향했다.


맑은 종소리가 울렸고, 카페에 들어가던 나기사는 녹차색의 직원과 정통으로 눈을 마주쳤다. 기묘한 사람이었다. 나기사는 한 달 동안 상대방과 제대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눈길을 피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고 점심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즈음에나 후다닥 달려와선 음료를 주문하고 가져가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이제 왔네요.


상냥하지만 독특한 울림이 담긴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기억 저편에서 들려오는 느낌이기도 했다.


* * * * *


우구이스마루는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지갑을 찾으러 나오지도 못하게 하다니, 독한 회사로군. 이번에 오면 얼굴이나 제대로 봐 둘까. 그는 언제나처럼 무색의 미소로 있었다. 어차피 지갑 없이는 집에도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올 것이다. 반드시.


카페는 온전히 그의 소유였기에 열고 닫는 것도 그의 마음대로였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퇴근할 시간이 다 되었지만 만약 그녀가 야근이라면 퇴근하다 들를 때까지 기다려도 상관없었다. 까짓 거. 작은 일이지. 우구이스마루는 카운터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평소에 읽던 시집을 펼쳤다. 시구는 노래처럼 머릿속을 떠돌았다. 비어있는 카페에 시에 온 정신을 집중할 무렵 익숙한 종소리가 들렸다.


이제 왔네요.


우구이스마루는 시집을 덮고 일어섰다. 상대방의 얼굴이 몇 시간 새에 푸석하게 죽은 것이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이 아니었다. 지갑을 놓고 가서든, 상사가 망할 놈이든, 야근을 했든, 셋 다였든.


까딱, 고개를 숙여 인사한 우구이스마루는 지갑은 주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 스팀을 올렸다. 지갑 찾으러 왔는데 뭐야. 이 사람. 설마 내가 어디다 떨어뜨렸나. 허탕 친 건가. 안절부절 못 하던 상대방의 표정을 상상하니 괜스레 그는 웃음이 났다.


들어.


우구이스마루는 상대방에게 방금 만든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토끼눈을 하고 아, 감사합니다. 받아들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우구이스마루는 눈을 접어 웃고는 지갑을 건넸다.


* * * * *


나기사는 한 손에 지갑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카페에서 나왔다.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예쁜 눈에 홀린 기분이었다. 뭐지, 어디 박물관 근처에서 본 사람 같은데. 나기사는 아무 생각 없이 따끈한 컵의 음료를 들이켰다. 따질까, 싶었지만 지갑까지 보관해주고 수고했다며 음료 한 잔을 서비스로 내어준 사람을 탓하기도 애매했다.


앗뜨뜨


카페의 남자는 그녀가 고양이 혀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 지갑을 여니 사진을 넣어두는 부분에 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내일도 뵙겠습니다, 010 xxxx xxxx.


핸드폰 번호가 유려한 글씨체로 함께 적혀있었다.

소규모로 디저트와 베이커리도 판매하고 있다. 며칠 전 새하얗고 보드라운 쉬폰 케이크와 무알콜 샴페인을 예약 주문한 손님-예약자의 이름이 아와타구치로 되어 있었다-이 왔다. 얼음 바스켓에 묻어두었던 샴페인을 꺼내 포장용 종이가방에 담고 손님에게 건네는 순간 ...


 분명히 건넸다고 생각하고 손을 놓았는데 어느 손에도 걸리지 않은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흩어진 유리조각과 바닥에 흐르는 달큰한 향의 액체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손님과 나는 동시에 물었다. 눈이 마주쳤다. 금빛 눈 속에 빨려들어 갈 것 같아 눈을 내리깔았다. 물건을 먼저 놓아버린 건 나였으니까.


 무슨 일이야?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주방의 사장님께도 들린 모양이다. 난 망했구나. 싶어 우물쭈물 이야기했다. 


 제가 못 받은 모양입니다. 


 중간에 끼어들어 내 잘못을 덜어주는 손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상황을 들은 사장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저장고로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 뒤 조금 다른 병을 꼭꼭 포장해서 리본까지 멋스럽게 묶은 사장님은 새 음료를 건넸다.


 똑같은 무알콜입니다. 맛은 조금 다르지만 괜찮으시죠? 

 물론입니다. 결례, 미안합니다.


 싸늘하지 않은 분위기로 인사를 끝낸 손님의 금빛 눈이 다시 이쪽을 보았다.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보드라워 보였다. 천연일까, 염색일까? 관리 엄청 잘 한 것 같은데 - 잡생각을 하는 내게 그가 말을 꺼냈다.


 유리조각에 손 베이지 않게 조심해 주시겠습니까? 동생들 같은 느낌이 나서, 다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말만 남기고 기묘한 손님은 돌아갔다. 왠지 귀가 뜨겁다. 


 흐음. 


 사장님이 하나뿐인 눈으로 이쪽을 보시며 기묘한 웃음을 지으신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 카페에 도착해 탈의실로 직행했다. 오전에 새로 왔다는 아이가 예쁘장한 긴 금발을 하고 있대서 두근두근하면서 빨리 온 게 맞다. 예쁜 아이를 보는 건 기분 좋으니까! 예쁘다니까 당연히 여자아이겠지! 하고 왔더니 웬걸. 탈의실이 잠겨있지 않을 때부터 나는 예상을 했어야 했다.


 "어...어..그......"

 "....."

 "....미안..."


 맨살이 드러난 등을 보고 말았다. 허리춤에 묶는 끈 하나, 목덜미에 묶는 끈 하나. 그렇게 달랑 있는, 앞만 가리는 속옷은 어디서 구한 건지 몰라도 잠깐 사이에 보인 등은 절대로 여자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잔근육이 예쁘게 잡힌 등은 분명히 남자아이의 것이기에 어색한 정적을 깨고 사과한 뒤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


 "너만 보면 불공평하잖아?"


 뭐?


 "그러니까 나도 볼테다."


 ....... 살려주세요, 사장님!!!!!!!!!!!! 

 "주문도 귀찮습니더. 만-날 먹던 걸로 주이소. 계산은 이걸로 해 주시고."


 역시나 오늘도 나른하게 카드를 내놓고 간 그에게 메뉴와 카드를 건네주고 돌아왔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쁘지 않지만 손님이 적지도 않은 날이었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해요."

 

 진상이 오기 전까지는 나름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아까부터 힐끔힐끔 카운터 쪽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다가와서는 수작을 건다. 명찰에 달린 이름을 부르면서 정다운 척 번호를 달라느니 뭘 더 달라느니 리필을 달라느니 우리 사이에 이러기냐니. 얼굴을 카운터 가까이 들이밀고 자칫하면 손목이라도 잡아챌 것처럼 구는 얼굴이 발갛다. 아. 술 취한 놈이다. 짜증나, 짜증나 - 안 된다고, 싫다고 말해도 덤벼드는 놈들을 구타해도 정당방위로 인정되면 참 좋을텐데. 자꾸 수작을 거는 게 짜증나서 던져버렸다.


 "애인 있으니까 비켜주세요."


 그래, 이 말로 정리될 줄 알았어. 완전체일 줄 몰랐을 뿐이지. 이 놈의 취한 손놈은 그마저도 상관없다는 듯이 군다.


 "그 나잇대에는 원래 이런저런 남자 만나고 다녀도 되는 거야. 아가씨 그러니까 나랑 나가자니까?"


 이런 **. 자주 오는 손님 중에 젠틀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왜 하필 이런 사람만 꼬여서! 내가 그렇게 호구같은 걸까? 오만 짜증이 다 나는 태도로 건성건성, 싫다고 거절할수록 이 빌어먹을 작자는 자꾸 카운터로 들어오려고 한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진짜로 들어와서 나는 피할 곳이 없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 


 "거 적당히 좀 하이소. 도야지 꽥-꽥 우는 소리에 귀가 다 따갑구먼예."

 

 그다. 그다. 그야. 주문도 귀찮아서 매일 같은 걸로 마시던 그가 내 팔을 잡아채려던 개자식의 손목을 붙들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곤 비웃고 있다.


 "넌 뭐야?"

 

 손목을 풀어보려고 애쓰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표정도 변하지 않는 그. 도대체 그 가는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입술만 비틀려서 웃고 있었다.


 "지가 야 애인인뎁쇼. 아까 무라 했습니꺼?"


 피식피식 웃으면서 그는 개저씨의 손목을 잡아챈 손에 힘을 주어 뒤로 꺾었다. 사색이 된 자식은 도망치듯 튀었다. 멀리 가는 것을 보더니 그는 내게 불쑥 말을 걸었다.


 "그라서.. 귀찮은 거 참고 도와줬는데 뭐 없습니꺼?"

 "리필이라도 해드릴까요? 아니면 간식거리라.."

 "거 삭막해가지고 우얀답니꺼. 내랑 데-또 안 할랍니꺼?"


 에? 벙 찐 표정으로 할 말을 잃은 나에게 그는 피식, 웃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이 사람 그러고 보니까 왼손잡이였지.


 "거, 답 없으믄 허락한 걸로 알고 기다립니더."


 ....다른 의미로 큰 일이 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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