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 관제사님과 마님의 짧은 불면의 밤 이야기

 

* * *

겪어본 자만이 안다. 내 의지로 잠들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겪어본 자만이 안다.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않아도 잠들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공포인가를.

겪어본 자만이 안다. 귓속에서 빽빽하게 꽉 짜인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로 풍성하게 울리는 노래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를.

 

며칠을 운신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아팠던지라 오늘만큼은 조금이라도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아닌 모양이었다. 는 귓속에 노래벌레라도 사는 듯이 귀를 막아도 속에서 올라오는 노랫소리에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냅다 발로 걷어차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도 깨어났다. 그야 옆자리에서 풀썩 소리가 날 정도로 이불을 울리는데 늦게 들어온 그가 깨어나지 않을 도리야 없었겠지. 안 그래도 3교대 근무를 하는 관제탑의 관제사이면서 에 대한 잔걱정도 많은 그가 깨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 미안해요. 당신을 배려하지 못했어요.

미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제 정말 잠들고 싶은데 말이죠.

 

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양 뺨이 손에 가려질 만큼 체구가 작은 그의 작은 마님이 괴로워한다. 삶을 함께하겠다고 이번 생에 서약하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불면증이었건만 바로 곁에서 사람의 몸을 갖고 사람의 생을 갖고 바라보는 불면증은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던 그는 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늘 먹던 약을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네요. 당신도 내일 일이 있고.

 

그럼, 잠깐 실례할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거실로 나가선 약하게 전등을 켜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였다. 이윽고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앉아 그가 하는 양을 얌전히 듣고 있다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슬리퍼에 발을 실었다.

 

나오셨나요? 침상에서 기다리셔도 괜찮은데.

당신이 일어나 있는데 제가 어떻게 누워서 기다려요.

곧 준비되는데도 말예요.

 

그가 준비하는 것은 휴식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캐모마일 차였다. 그새 티백을 건져내고 한 김 식힌 데다가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를 위해 약간의 냉수를 더해 마시기 적정한 온도로 만들어놓은 캐모마일 차. 단 한 잔에도 그의 배려심이 물씬 느껴질 정도였다.

 

매번 배려받기만 하니 미안해서 어쩌죠.

그런 말씀 마세요. 당신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예쁜 찻잔에 담긴 캐모마일 차 두 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드세요. 저도 마실게요. 함께 마시면 조금 더 효과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사과보다는 감사의 말이 조금 더 듣기 좋습니다. 살포시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는 새벽임에도 펄쩍 뛸 뻔했다.

 

매번 잠들지 못할 때마다 이렇게 준비해 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거예요. 마치마치 당신의 삶을 절반은 꿈을 위해서, 남은 절반은 나에게만 다 쓰게 하는 것만 같아서 미안함이 컸나 봐요.

 

그가 의 맞은편에 앉았다. 얼마나 반듯한 사람인가.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했다고 이런 사람과 짝이 되어 있을까. 는 잠시 움츠러들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넓은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당신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네요.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입니다. 여태까지의 당신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건데도요.

 

은 그의 뺨과 뺨을 맞대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차가운 인상의 그에게 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아니, 더없이 평범한 것만 같은 이 그의 눈에 들은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를 묻는 것이 먼저일까? 함께 공부하면서 가벼운 데이트도 즐기던 철없는 대학생 시절을 떠올린 는 풋, 웃어버렸다. 과거는 어찌됐든 좋았다. 그가 관제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내보였을 때 누구보다 앞서 당신의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의 공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려고 애쓴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당신이 당신이라 참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많이 사랑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는 서툰 고백을 하곤 자리로 돌아와 그의 선물을 입안에 머금었다. 달큰한 캐모마일의 향기 속에 연한 사과 맛이 느껴졌다. 불면의 밤이 길다 보니 집에 준비해둔 차 중에선 캐모마일이 제일 빨리 비워지곤 했다.

 

다음번에는 당신에게 즐거움으로 가득한 티타임을 선물하고 싶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어서 차를 마시라는 둥의 재촉은 하지 않았다. 그의 찻잔은 이미 비어 있었는데도. 그저 자신의 작은 마님이 하는 양을 따스함이 담긴 한색의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랑스럽고 따스한 새벽의 풍경 속에 괴로움도, 공포도, 미칠 것 같은 시간도 점차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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