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아요
심해와 구분할 수 없는 하늘에 총총 뜬 별이 박혀 있다. 오늘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발길을 내딛어 일터의 밖으로 나오니 낯익은 번호판을 단 차가 한 대 섰다. ―의 얼굴이 환해진다. 종일 기대해 마지않던 귀가 시간, 그 귀가의 끝을 담당하는 사랑스러운 나의 남편, 사랑스러운 나의 달링,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그이가 직접 데리러 온 날.
매끈하게 빠진 유선형의 작지 않은 세단 앞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이가 내려와 빠르게 걸어온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그리고 제로. 넓고 시원한 보폭으로 다섯 걸음만에 다가온 그이의 품에 냅다 안겨버린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꼭 마주안아주는 것이 그이의 인사이다. 힘이 들어간 손이 날이 갈수록 더욱 믿음직하다.
그럼, 돌아가 볼까.
출장을 가더라도 어떻게든 내 퇴근 시간에는 맞춰 기다리는 그가 놀랍고 고마워서 어떤 답례가 좋을까, 고민도 했지만 그이는 늘 자신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일이라고만 한다.
크고 투박해보이지만 잘 관리받은 손이 차 문을 잡아당겨 연다. 부드럽게 열린 차의 조수석은 늘 내 차지다. 피곤할 테니 따끈따끈하게 데워놓은 좌석 위로 앉으면 그의 손이 딱 알맞게 안전벨트를 매어 주고는 무릎담요를 덮어 준다. 부스러기 떨어지지 않는 가벼운 사탕들도 손닿는 데 자리하고 있다.
쪽.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자기도 여러 일에 시달릴 텐데 오로지 사랑만으로 데리러 오는 그이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 것은 오늘 하루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서슴지 않고 애정표현을 할 수 있는 걸지도.
뺨에 연하게 립스틱 자국이 남자 그는 훗, 하고 웃었다. 살짝 눈을 내리감은 모습에 한 번 더, 반대쪽에도 하고 싶었지만 일단 도로를 점거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집에 돌아가야 하겠지.
속 썩이는 클라이언트는 없는지, 여전히 ‘그 일’에 생각은 있는지, 나오고 나서는 어떤 생각이 있는지, 그는 제 아내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물었다. 작은 새처럼 지저귀던 아내가 어느샌가 조용했다. 차를 멈춘 틈을 타 옆을 보니 살풋 잠든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꽤 피곤했나 보군, 그는 에어 컨디셔너를 조작해 편히 잠드는 데 최적의 온도를 맞추고 미끄러지듯이 운전했다.
* * *
차고에 차를 세울 때까지 아내는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보통 피곤했던 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침에 나가서 밤에 돌아오는 날이면 피로가 쌓이고도 남지. 그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고, 양팔로 아내를 안아들었다. 어디 부딪히기라고 할까,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현관을 열고 들어가 복도를 지나 침실의 문을 열었다. 고풍스럽기보다는 단정하게 꾸며 놓은 단순한 구조의 침실에 조심스럽게 제 사랑을 눕혀놓았다.
그는 문득 거울을 보았다. 차에 탔을 때 살포시 뺨에 남긴 키스가 수줍은 사과의 뺨처럼 물들어 있었다. 자각하고 나니 빙그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아내의 화장품들 사이에서 클렌징 워터와 화장솜을 몇 장 골라냈다. 화장솜에 클렌징 워터를 두어 번 펌프질해 적시곤 조심스럽게 눕힌 아내에게 다가가 화장을 지워주었다. 화려하게 꾸미고 일을 가는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화장이 지워진 모습도 이목구비가 또렷하니 아름다웠다. 잘 관리해 윤기 나는 머리카락도 다시 한번 쓸어보고, 예쁘게 관리한 손 끝에 입도 맞추어 보았다.
…달링?
단잠에서 깬 아내의 잠긴 목소리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는 활짝 웃으며 눈을 맞추었다.
그럼, 허니. 집에 왔으니 오늘은 무엇부터 할 텐가?
목욕, 티 타임, 아니면 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입모양을 보던 아내는 일어나 앉아 그의 품에 기댔다.
일단 목욕부터 하고, 티 타임에 당신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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