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가 찾아온 건 아주 오래 전이었다. 그러니까, 혼마루에 오기 한참 전부터라고 하면 이들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시간이 크게 남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는 느낄 수 있다고 했었다.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토록 만나기를 간원하고 기원하는 동안은 보이지 않던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두고 왔다는 것은 누군가 사람의 운명이라는 붉은 실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치는 듯했다.

 

시리도록 푸른빛이 반사되는 얼음 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는 조용한 몸가짐으로 사니와의 방으로 향했다. 자신에 비하면 몇 배의 시간을 혼마루에서 보내온 헤시키리 하세베는 방 앞에 선 코우세츠 사몬지에게 적대감 넘치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명만 아니라면, 네놈 따위.”

불필요한 싸움은 원치 않습니다.”

 

코우세츠 사몬지는 잔잔하게 제 의사만 말하고 방문을 넘어섰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뒤에 선 헤시키리 하세베의 표정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또 어떤 전투에

싸움은 싫다 말했건만 제 주군은 무리해가며 그날 정해놓은 일정을 소화하곤 했다. 몸이 좋지 않다고 했었던가, 함께 당번을 섰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코우세츠 사몬지는 자리에 누워 있는 자신의 주군에게 다가갔다.

 

조금 더 가까이 와주세요, 코우세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사니와는 자신에게 다가와 달라 말했다. 잦은 싸움에 썩 호감이 있었던 주군은 아니건만 코우세츠 사몬지는 가슴 어딘가에서 욱신거림을 느꼈다. 색이 반쯤 꺼진 눈동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을 향한 눈빛을 스스로 피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왠지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영영 말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 천 번의 여름을 보내길 소망하며 붙은 이름이 무색하게도 이별의 계절이 너무도 빠르게 다가왔노라고, 라고 구구절절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당신은 싸움을 싫어한다고 했었죠.

 

혼마루의 여주인은 쓸쓸한 낯빛으로 우는 듯이 웃었다. 또렷하지만 바깥으로는 새어나가지 않을 목소리로 나츠는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싸움이 없는 세상을 당신과 함께 만들고 싶었어요. 그 때문에 당신의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들어버렸지만, 그것만이 내 소망이었어요.”

 

남자는 잠자코 앉아 그 이야기를 들었다.

돌이켜보면 여주인의 싸움은 딱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졌었다. 남자의 뒤통수에 망치를 후려맞은 것 같은 울림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시간이 모자라요. 내가 없이도, 당신은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요, 나의 코우세츠.”

토오하라 치나츠. 오직 당신에게만 불리고 싶었던 내 이름이에요.”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고, 소원이었다. 진심이었으며, 또 고백이기도 했다.

 

그것이 토오하라, 당신의 소원이라면. 당신의 명, 받들겠습니다.”

 

그 해, 그는 여름은 맞이하지도 못한 채 겨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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