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 줄 알았어. 정말이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니와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난 주, 가타부타 말도 없이 오밤중에 나타나 고백한 사사누키의 기행에 대한 회포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참동안 답이 없었다. 사니와는 고개를 들고 옆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옆에 있었던 도검남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샤? 사샤?

 

사니와는 사색이 된 채로 놀라 일어났다. 분명히 조금 전 수박 조각을 아삭아삭 먹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란히 앉아 분위기도 좋은데 술이라도 가져올까~ 하던 도검남사가 잠시 연못을 보는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디로 갔담?

 

영문을 알 수 없게 사라진 사사누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주인은 급히 신발을 발에 꿰었다. 마음이 급한 이상 하얀 샌들이 제대로 신겨질 리 만무했다. 두어 번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신기를 반복한 주인은 골이 난 얼굴로 맨발로 해변에서 일어섰다. 조각조각 잘라놓은 수박과 참외가 놓여있던 접시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엔 신발을 들고 정처없이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정신없는 일주일이었다. 끽소리도 못 낼 만큼 강한 포옹으로 제 의견을 표출하는 남사는 여태껏 없었다. 저기 멀리 동동 뜬 접시배처럼 굴더니 갑자기 거리를 좁혀와서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이 남사와의 일주일은 참으로 스릴이 넘쳤다. 콕콕 몇 번 좀 찔러봤다고 뱀 나올지도 몰라? 라더니 진짜로 팔을 뱀처럼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었다.

 

,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사니와는 연대전을 위해 옮겨온 여름 별장 부엌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포크 두 개가 가지런히 놓인 것이 이마저도 그와의 추억인 것 같아 왠지 모를 흡족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는 신발을 고쳐신고 다시 물가로 나아갔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그는 다시 자신을 찾아오고야 말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편하게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샤, 사샤.

 

여러번 불렀지만 답은 없었다. 바다는 조금 무섭다더니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사니와는 아까의 그 자리로 향했다. 바다에 버려졌다던 이야기 때문에 바다가 두려울 그에게 바다가 무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사니와였다. 절대로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는데.

 

어디로 가 버린 거야 대체.

 

볼멘소리를 한 마디 뱉은 사니와는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면에는 한 사람분의 그림자만 비치고 있었다. 두 사람분의 그림자가 비치면 좋을 텐데. 무의식적으로 사니와는 수면 위에 두 사람분의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보고 싶어.

 

십 분, 이십 분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사니와가 기다리는 도검남사는 사니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그 말대로 일주일을 족히 붙어있던 사이에 사라지고 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뙤약볕이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팔이 따가웠다. 기다리는 것을 멈추고 슬슬 들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사니와는 얇은 겉옷을 걸치고 수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다렸어?

우왁!!!!!!!!

풍덩.

 

동시에 세 개의 소리가 해변을 메웠다.

 

아하하, 미안, 미안.

 

가 서 있었다. 기척도 없이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림자 하나가 물에 어리는 것을 보자마자 사니와는 실제로 놀라자빠져서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내가 나온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

 

사사누키는 한쪽 팔에 서핑보드를 끼고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니와는 한참 첨벙대더니 물을 털며 물 바깥으로 일어나 나왔다.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오니까 그렇지. 츠루마루도 아니고.

아하하, 미안. 그럼, 사과하는 김에 같이 서핑이라도 해줘.

나 서핑할 줄 몰라.

가르쳐 줄테니까. , 여기.

 

사사누키는 서핑 판을 팡팡 두드렸다. 꽤나 웃긴 모습으로 물에 빠진 주인을 보고 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니와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사사누키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한번 해 보면 재미있다니까. 바다가 무섭다는 것도 잊어버릴 수 있어. . 어서.

 

사사누키는 빈 손을 사니와 쪽으로 내밀었다. 파도 밖으로 기어나오듯이 나온 사니와는 그 손을 잡았다. 열에 데워져 따뜻했다. 하얀 손과 그을린 손이 얽혀 물 위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파도는 끊임없이 들이쳤다. 먼저 보여준다던 사사누키가 멋지게 파도를 타고 돌아왔다. . 평소에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좀 많이 멋졌어. 사니와는 솔직하게 감상을 드러냈다.

 

, 여기 타 봐.

 

그는 바다 위에 서핑 판을 띄우곤 사니와를 향해 손짓했다. 어차피 젖은 거 들어가나 보자, 지금보다 더 웃기게 떨어지겠어? 사니와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거 뒤집히면 어떡해?

내가 잡아줄 테니까 걱정 마. 너무 겁먹으면 흔들어 떨어뜨릴지도 몰라?

이봐!

하하, 장난, -!

 

한 손을 들고 와하하, 밝게 웃는 얼굴에 누가 졌겠는가. 먼저 좋아한 사람이 지는 거다. 사니와는 조심스럽게 서핑 판에 몸을 실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걸 해보라고 하지는 않을테니까~

 

사사누키는 가볍게 웃었다.

 

일단은 몸과 서핑보드의 수평을 맞추고. . 그렇게 손으로 저어나가는 거야. 어이쿠.

 

운동신경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보고 배운 것은 잘 따라하는데 이상하게 이런 건 못하는 사니와였다. 사실 어릴 적에 스케이트보드도 못 타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그만뒀던 사니와는 서핑보드 위에서도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져 버렸다.

 

어푸푸-.

어어, 괜찮아? 물 안 먹었어?

안 먹었어.

, 그럼 다시 해 보자.

 

생각보다 사사누키는 좋은 선생님일지도 몰랐다. 첫술에 배부른 건 없으니 다시 하면 돼~ 하고 느긋하게 말하는 것이 말이다.

 

둘은 그렇게 한두 시간쯤을 서핑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에 몰두했다. 수면에 비친 두 모습을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조차 흐뭇하게 바라보느라 낮이 길어진 어느 날이었다.

 

분명히 의도대로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었다. 만듦새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대나무 숲에 버려버리다니, 갓 태어난 아기를 버려서 죽기를 바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날붙이로서 그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육신을 입은 사사누키는 이번에 제가 돌아와야 할 곳을 휘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쳤던 이번 대의 주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검을 수집하는 것으로는 과거에 만난 주인들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인간이 하나, 도검이 족히 백은 되어 보이는데도 제련소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검을 치고, 본성의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탐욕도 부렸다.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도검남사는 있었으나 그에 대해 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기가 새 집이란 말이지.”

 

사사누키는 자신의 몸을 움직여보며 혼자 말했다. 담담하게. 눈을 마주치긴 했지만 그 주인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를 보는 눈빛이 거슬렸다. 그래서 새롭게 얻은 육신이 지내는 본성을 돌아올 곳으로 결정했다. 그뿐이었다.

 

주인의 눈빛은 여느 도검남사를 보는 것과 달랐다. 그것만큼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보는 눈과 그들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손에서 놓아버릴 징조. 사사누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인간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갈 존재들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손에서 놓아버릴 존재들이었다. 어차피 어느 순간엔 자신을 버리고야 말 존재였다. 거기에 주인이란 백 자루의 검을 통솔하는 입장이니 하나쯤은 선물로 줘버리거나 하면 다행이고 어디로 사라져도 모르지 않겠는가.

 

언제 어디에 버리더라도 자력으로 돌아올 준비는 되어있지만 돌아올 곳은 본성이지 저 주인의 손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

 

분명히 시작은 동정이었다. 버려졌던 검. 수차례 버려졌던 검이라는 내력을 조사해보고 나서는 아직 도검남사로 불러내지도 않은 검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불러내고 나서 표표하게 빛나는 푸른 눈에 그대로 비쳤으리라. 그 눈엔 여느 설화를 거느린 검들이 거느린 자부심도, 도검남사로서의 사명도 빛나지 않았다. 별 기대 없는 눈. 그 눈이 저를 옭아매는 밧줄이 될 거라고 사니와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민이었다. 버려짐의 아픔을 아는 사람에게 그의 눈은 뚫을 수 없는 장벽으로 보였다.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온전히 버려졌다는 아픔을 아는 사람에게 그의 눈빛은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이었다.

 

그래서 넘고 싶었다.

 

연민과 동정은 그를 찾게 했다. 거처에 자주 발걸음하고, 당번으로 근시로 그를 자주 내세웠다. 버려진 검이라는 상처를 더는 안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육신을 입었으니 아침해를 맞고 밤별을 맞이하는 감상이 그에게도 빛나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라났다.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심정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사샤, 사샤.”

 

여느 남사에게 대하듯 애칭을 지어 부르고 슬쩍 상점가를 갈 때 호위로 지정하고, 그가 시야 안에 들어오도록 하루를 조정했다. 분명히 처음엔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습관처럼 그를 눈 안에 두고 보니 순간순간 어떤 사명감이 자라났다. 주인으로서 그를 지키고 싶었다.

 

*

 

기분이 나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물건, 그 물건에서 피어오른 물상신, 부리는 사람의 명령을 따르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건 떠나면 물건으로 돌아가야 할 ’. 그런 것이 자신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가 없었다. 육신을 입자 일정한 박자를 타고 뛰는 심장도 신기할 것이 못 되었다.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고 저녁이면 별이 떠오르는 것도 별 감흥 없는 일이었다. 싸우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그는 주인의 명령을 즐기지 못했다.

 

어차피 가만히 놔두고 방치해도 곁으로 돌아가고야 말 불길한 소리를 하는 도검남사 따위를 자꾸 그 시야 안에 두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름을 두고 괴상한 별명으로 부르고, 시야 안에 두려고 하는 주인의 의도야 빤했다. 상점에 데리고 가서 선물을 사준다거나 하는 행동도 때로는 별 의미없이 느껴졌다.

 

*

 

사샤, 이거 받아.”

어느 날 주인은 그에게 뭔가를 건넸다.

 

남사의 본분은 역행군과의 싸움이라지만 너를 싸움에 매번 보내고 싶지는 않네.”

궤변이다. 시간역행군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육신을 입을 일조차 없었을 그였다.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주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여기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돌아오는 건 특기라고? 사사누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래도. 말야. 잠깐 겉옷 좀 빌려 줘.”

 

주인의 이런저런 명령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부탁이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겉옷을 벗어주었다. 주인은 오마모리 하나를 꺼내놓았다. 금실로 마감된 부적 위로 사사누키의 문양이 수놓여 있었다. 주인은 부적을 갈무리해서 옷자락에 넣고 다시 바느질했다.

 

꼭 돌아와야 해.”

주인과 눈이 마주친 것은 그것이 두 번째였다.

하하, 우리 주인은 걱정이 지나치네. 반드시 돌아온대도.”

 

눈빛이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

 

오늘의 근시는 사사누키.”

자네, 오늘도인가?”

 

전투부대를 이끌고 여름 연대전에 다녀온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어깨를 으쓱했다. 끼고 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주인은 사사누키를 불러낸 이후 자주 근시로 임명했다.

 

그냥. 그럴 이유가 있어.”

자네 그러고 보니 요즘 눈빛이 많이 변했다만.”

츠루가 보기에도 그래? 아하하. 그렇지만.”

 

사니와는 눈을 초승달처럼 휘어가며 고개를 돌렸다. 웃으면 참 예쁜 얼굴이었다. 동그란 눈은 초승달처럼 휘고, 입술 새로 앞니가 살짝 보이는 예쁘장한 얼굴. 그 얼굴이 요즘 향하는 곳이 화제의 신입이라는 걸 모르는 고참 도검남사가 더 드물었다.

 

처음 신입을 데려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일세.”

농담하지 마, 아니, 농담이 아닌가.”

, 자네가 알아서 처신하겠지.”

 

사니와로 지낸 7년이 넘는 시간만큼 신뢰를 쌓은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무슨 일이든 사니와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자리를 비키며 마침 그 근방을 지나던 사사누키를 불러세워 귀엣말을 전하곤 높은 수압의 물총을 챙겨 나갔다.

 

*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발걸음이 본성이 아니라 주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부적을 받은 이후부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겉옷을 떼어놓기도 했지만 머리와 발이 따로 놀았다. 해가 뜨면 근시임을 빙자해 주인에게 향했고, 별이 뜨면 호위를 핑계 삼아 주인이 보이는 반경 안에 머물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의 눈빛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기엔 단 두 번밖에 눈을 마주친 기억이 없었다. 개연성 없는 소리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나를 버릴 인간, 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마음의 소리는 언젠가부터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저 눈이 진심이겠냐는 생각이 어느 순간 기울어 절벽 아래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발길이 저도 모르게 한 점으로 좁혀가고 있었다.

 

*

 

벌컥, 문이 열렸다. 오랜만의 야근을 하고 있던 사니와는 문을 열고 들어선 그림자의 존재에 깜짝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이내 사니와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어서 와, 사샤. 할 말이라도 있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성큼성큼 그가 걸어왔다. 집무실의 책상에 가로막혀 대나무 사이에 갇힌 꼴이 된 사니와는 그에게 무슨 일이냐며 다급하게 물으며 파닥파닥거렸다. 병아리 같았다.

 

*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꿈인 줄 알았다. 그는 병아리 모양으로 파닥거리는 제 주인을 억센 팔로 힘껏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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