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정은 4지역의 2, 4번 담당이야.”
“…응.”
“출진은 전력확충계획 2번, 아즈키 나가미츠 탐색 지역이고.”
“……응? 응.”
“이봐, 주인. 듣고 있어?”
“뭐라고?”
하아, 내가 미쳐. 코류 카게미츠는 요즘 잦아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즘 따라 주인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근시인 자신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었다. 1부대 대장과 근시를 분리해 지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하냥 기뻤다. 누가 전투에 나가든 주인의 곁을 지키고 앉아 총애받는 용용이로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주인이 딴 생각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류 카게미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야말로 거의 울기 직전의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했던 주인이었다. 원정으로 몇 시간 자리를 비우는 것도 견디지 못해서 혼마루 시간으로 10분짜리 원정도 보내지 않는 주인이었다. 아무리 수행을 위해서라지만 나흘간 자리를 비우는 것도 기다리고 싶지 않다며 (허가된 일이지만) 수행용 전서구를 날려 혼마루의 시간을 멋대로 돌려버리고, 단 한 번도 1부대 부대장에서 해제한 적도 없는 주인이었다. 하다못해 자신은 어떤가? 전공으로 따져도 당당히 목록 첫 페이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생각은 무슨…. 별 것 아냐.”
과거의 어느 시점 같으면 사근사근 웃는 얼굴로 네 생각 하고 있지, 라고 답변하던 사랑스러운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시큰둥하게 원정을 보내고, 내번을 보내고(그 내번 담당도 몇 달째 바뀌지 않아 다이한냐 나가미츠의 볼멘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전투에 나가는 남사들에게 다치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이게 매너리즘인가? 너무나도 오래된 일상에 권태감을 느끼는 건가? 그러다 보니 나에게서도 멀어진 건가? 헌신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으로 남사는 원인을 곰곰이 되짚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시작은 작년 즈음부터였다. 새로운 도검남사가 자주 충원되는 것도 아니던 시절, 시간정부에 불만을 품은 주인은 현세와 연결된 단말에 이것저것 새로운 걸 깔기 시작했었다. 몇십 개의 어플리케이션이 단말에 깔렸다, 지워졌다를 반복했다.
이건 랭킹이 있네, 아웃. 이건…. 가챠가 너무 답이 없어. 안 할래. 이건…내 사회적 명예가 걱정되는데? 아, 그거? 이벤트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지웠어. 아, 그거? 플레이어를 너무 막 대해서….
잠시간의 일탈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인이 야금야금 책장을 하나 비우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책을 좋아하다 못해 껴안고 살던 주인이 몇 권을 사니와마켓에 내놓더니 안 팔리는 책을 버렸다. 카센 카네사다의 기쁨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귓전에 들릴 것 같았다. 드디어 주인이 책을 베고 사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방을 만들고 있다면서! 하지만 늘, 일 보의 후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게 비워버린 책장 한 켠에 CD와 태피스트리와 인형들이 가득 차기 전까지 아무도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었다. 도검남사들이 느끼기에도 시간정부가 제대로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문제를 알아차린 것은 역시 주인 곁에서 365일을 보내고 있던 코류 카게미츠였다. 안 하던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설치지를 않나, 갑자기 만방에서 원고지 뭉치를 싸들고 오질 않나, 오늘처럼 딴 생각을 하느라 원정 부대와 출진에 대해서도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질 않나. 갑자기 시찰이라도 나오면 이건 혼마루 방만 경영이라고 경고라도 먹을 것 같은 기세로 대충대충 일하면서 주인은 단말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주인이 빠진 것은 각종 리듬게임이었다. 단말기 상단에서 떨어지는 표식들을 타이밍 좋게 맞춰서 점수를 따는 게임. 대사 한 줄 없이 그림만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리듬게임까지는 봐줄 만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정하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내용의 게임도 괜찮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것도 하고많은 게임 중에서 도검남사들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남성 캐릭터들만 우글우글한 게임!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했다. 코류 카게미츠를 눈앞에 두고도 원래 일대일의 관계라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다른 남사들을 과도하게 칭찬하다가도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그런 바람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치우고 새로 채우고, 굿즈를 사고, 그 굿즈에 입을 맞추고. 코류 카게미츠로서는 식지 않는 주인의 바람에 아주 돌아버릴 노릇이었다.
“내일부터 라이브야. 방해하지 마.”
“주인, 지금은 전시상황이다만.”
“전쟁 중에도 휴가는 있는 법이야. 정말 급한 일이라면 내가 정신줄 놓고 라이브만 보고 있을까 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오죽하면 주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던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마저 주인에게 지금은 전시상황이라는 점을 일깨워줘야 했다. 하지만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나약하게 키웠냐고 일갈까지 했다. 아니, 7주년을 맞은 사니와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기가 찼지만 시간정부의 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올해도 글러먹은 듯했다.
어쨌든, 주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코류 카게미츠의 말을 말 그대로 반쯤 ‘씹었다’. 차라리 포기가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포기도 안 되는 제 심정을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내 지시 없어도 이제 너희들 알아서 잘 하잖아.”
“수리는 네 손을 거쳐야 하거든.”
“그 외의 시간은 좀 놔두면 안돼?”
“‘내’ 주인을 어떻게 그냥 놔둬?”
“그래그래. 네 주인이긴 하지.”
어디의 공주님이기도 하고 말이야. 주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콱 씨. 조화라도 부려서 저놈의 뽑기를 아주 폭망하게 만들어 버릴까. 코류 카게미츠는 주인의 건성을 더 견딜 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놔.”
“뭘.”
“그 단말기 이리 내.”
“싫어, 내 건데 왜?”
“자기는 내 거잖아?”
“뭐?”
말도 안 되는 궤변인 줄 알면서도 코류는 단말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게임의 이벤트 기간이라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다. 주인이 손을 뻗었지만 코류의 팔이 조금 더 길었다.
“너!”
“흥.”
주인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코류 카게미츠는 단말기를 들어올렸다. 원체 키가 작은 주인이라 조금만 들어올려도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도달했다. 씨익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돌았다.
“자기야, 이거 그대로 던지면 어떻게 돼?”
“넌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와, 살벌하네에. 그런데 그럴 수 있어?”
“하?”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자기 내 얼굴에 약하잖아.”
“지금 굉장히 강해진 기분이거든?”
“어디 한 번 해봐, 그럼. 풀-챠지한 미스터 챠밍 리틀드래곤의 진심을 얕보지 말라고.”
그는 한 손에 단말기를 든 채였다. 얼굴에 진심이 가득했다. 보랏빛 눈은 장난스럽지만 진지했다. 이 새끼 이거 그대로 일 치겠는데. 주인의 머리에 번개가 일었다.
“바라는 게 뭐야?”
“주인 잃은 도검남사가 바라는 게 뭐겠어?”
“똑바로 말 안 해?”
“응. 알 때까지 말 안 할 거야.”
“용가리 너 진짜!”
주인은 의자 위에 올라가서 손을 뻗었다. 코류 카게미츠는 솜씨 좋게 팔을 휘두르며 단말을 빼앗은 손을 잡히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주인이 모서리를 잘못 밟고 휘청했다.
“오, 위험하지 위험.”
“야!!!!!!!!!!!!!!”
코류 카게미츠는 너무나도 익숙한 손짓으로 주인을 받아내었다. 졸지에 팔에 매달린 빨래 꼴이 된 주인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그는 두르고 있던 모포로 주인을 꽁꽁 싸맸다. 아기는 포대기에 꽁꽁 감싸놓으면 조용해진다. 자그마치 800년은 묵어버린 도검남사에게는 주인도 아기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바둥거리던 주인은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느끼고 얌전해졌다.
“오늘은 우리 자기, 나랑 시간 좀 보내야겠어𝅘𝅥𝅮”
그는 조용히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단말기를 버려놓고 방으로 향했다. 단말기에서는 여전히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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