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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작은 아이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소원을 이루어주었을 뿐인데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남자는 문신을 갸우뚱 흔들며 손도 대지 않은 쟁반을 거두었다. 쟁반 위의 그릇은 무엇 하나 차게 식지 않은 것이 없다. 뽀얀 우윳빛의 쟁반덮개 위로 먼지가 몇 알 내려앉은 것을 후, 불며 그는 답이 없을 노크를 했다. 고요했다.

 

작은 아이는 살아있다. 그야 당연하다. 그가 그렇게 느끼고 있기에 작은 아이는 몇 날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서도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온 곳은 특수한 곳이었으니까. 삶을 느낄 수도 있고 죽음을 감지할 수도 있었다. 다만 작은 아이는 무슨 짓을 하든 결코 죽을 수 없다 그것이 그의 세계의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는 손수 양송이 크림 수프를 내다버렸다. 물에 향을 온통 빼앗긴 찻잎도 미련 없이 털어버렸다. 온기를 주변에 모두 빼앗기고 남은 액체 역시 미련없이 흘려버렸다. 저 작은 아이는 이곳에 온 이후로 단 한 번의 끼니도 먹지 않았다. 그가 바라던 모든 것을 손에 쥐어주자 맥없이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 아이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럴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원하던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 그것이 그의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코토리.

 

나지막한 음성이 부드럽고 달콤하게 작은 아이를 불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살포시 문을 열어 볼까? 그는 코토리를 저택으로 데려온 뒤 처음으로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이 문을 열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뺨을 맞대고, 손을 부드럽게 그러잡고 싶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고 온 시간이 다시 제자리에 설 동안 그는 작은 아이와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떨어져 있었던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육신을 갖고 작은 아이를 만난 뒤로 그는 작은 아이와 언제나 한 몸이었던 가지처럼 붙어 지냈기 때문이다.

 

집이 갖고 싶어.

 

작은 아이의 입버릇이었다. 여기가 네 집이잖니. 넓은 툇마루를 가리키며 그는 다정히 지저귀곤 했다.

 

여기 말고, 온전히 내 소유의 집.

 

그렇구나. 너에게는 이곳에서 너만을 따르는 이 모두가 네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는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골똘히 생각했다. 작은 아이의 소원은 곧 자신의 소원이었다. 온전한 나의 소유를 갖는 것. 그래서 그 작은 아이를 제 소유로 더했다. 과정은 지난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약간의 눈속임으로 충분했다. 작은 아이는 손쉽게 그가 쳐놓은 새장에 제발로 들어왔다.

 

소리없이 문이 그 입을 벌렸다. 조금의 틈새로 큰 발을 들여놓은 그는 조용히 작은 아이의 방 안을 바라보았다. 작은 아이의 앞으로는 사람의 머리 형상을 한 것이 여럿 놓여 있었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머리들은 형상이 다양했다. 몇 개는 눈을 부드러이 감고 있고, 몇 개는 한쪽 눈을 살포시 감은 채 웃는 상을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전설 속에 나오는 요정처럼 뾰족한 귀를 하고 있었고, 어떤 것은 양쪽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머리 뚜껑이 열린 것들은 그 형상이 뒤집힌 채 작은 아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림잡아 수백 개는 될 법한 머리! 작은 아이가 눈여겨보았던 형상들은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진열해놓은 그 자리에 작은 아이는 없었다.

 

작은 아이는 그 모두를 뒤로하고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의아함을 표하지 않으려 애쓰며 침상 옆의 조그만 의자에 걸터앉았다.

 

코토리.

 

부드럽고 낮은 음성이 다시 작은 아이를 불렀다. 꿈의 틀에라도 끼인 것인지 작은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음성이 작은 아이를 불렀다. 여전히 작은 아이는 꿈틀하지 않았다.

 

일어나렴.

 

그는 귓가에 숨을 후, 불어넣었다. 작은 아이가 눈을 떴다. 은빛의 눈동자에 졸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저택에 와서 눈을 뜬 것이 몇 번째인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던 작은 아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여기는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야. 작은 아이는 고개를 젓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

 

그의 인내심은 동났다. 얼굴에 새겨진 문신은 이미 붉게 탄 지 오래였다. 뺨에 느껴지는 은은한 작열감이 그의 고양되었음을 아까부터 알리고 있었다. 기껍고도 사납게 타는 불꽃은 그의 손을 타고 흘렀다. 그는 이불을 걷었다. 붉은 공단 이불이 사라락 소리를 내며 걷히고 순수하디 순수한 우윳빛을 띤 잠옷이 드러났다.

 

한때 꿈을 꾸듯 선명하게 빛나던 은색 생명력은 사그라든 채였다. 눈을 떴지만 여전히 잠에 들어 있는 것만 같은 빛을 띤 회색빛에 그의 얼굴이 가득히 반사되었다. 조그마한 색 바랜 입술에 그가 머물렀다 떨어졌다. 회색 눈에서 물기가 또르륵 굴러내렸다.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는 이슬이었다.

 

코토리,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준비해 주었잖니.

 

코토리라고 불린 작은 아이는 빛이 꺼진 눈으로 방을 휘 둘러보았다. 붉은빛의 고급스러운 벨벳이 내린 벽이 그 눈에 들어갔을까. 코토리는 자그마한 발로 바닥을 짚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푹신한 카펫이 그 발에 감겨들었다. 코토리는 그가 준비해놓은 작업대에 올라앉았다. 그러나 붓을 잡지는 않았다. 그가 준비해놓은 수많은 조각들에도 무심한 눈길을 줄 뿐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작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작업대 앞에 앉아 무심히, 공허하게 허공에 뜬 시선을 가슴에 안았다. 가슴에 가만히 귀를 가져다댔다. 작은 아이에게 어울리는 작은 심장이 콩, , , 느릿하게 뛰었다. 작은 아이의 몸은 따뜻했지만 차가웠다. 가녀린 팔이 작동하듯 그를 마주안았다.

 

그래. 그거면 된단다.

 

그는 작은 아이와 뺨을 맞대고, 손을 부드럽게 그러잡았다. 철저하게 하나처럼 뛰는 고동이 낯설었다. 잿빛 눈에 다시 그가 비쳤다. 초점이 붕 뜬 눈조차 자신이 비치는 것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안구 없는 눈 사이로 그림자는 하나로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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