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은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한 번뿐이었을까?
두 번, 세 번, 아니 두 손으로는 꼽아볼 수 없을 만큼 상상해 봤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손발이 다 부르트도록 전장에서 뛰는 날이 있었어도 생각해 마지않았던 것이 있었는데.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축하해, 대장.”
“와, 주인, 이제 과자 많이 줄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숨이 차오르듯 달려왔다. 어쩌면 주인이 물러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식장에 오르기 전까지, 저쪽에서 편의를 보아준 식장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한 번쯤은 주인이 다시금 생각해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보다도 예쁘구만.”
씁쓸하게 내뱉는다. 연륜 있는 오랜 수장의 뇌가 애써 얼굴 근육을 환한 웃음으로 바꾸어 낸다. 고작 인간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아이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자식 하나가 축하받을 일을 겪는 일은 천 년의 길을 걸으면서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아무런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다잡는다. 여기서 말 그대로 일을 벌일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일을 치러선 안 된다.
“고마워.”
너는 환하게 웃는다. 아이가 저 하늘에 뜬 태양보다 더 환하게, 아름다운 여름날처럼 웃는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웃음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언젠가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니, 처음을 단정짓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의 나는 그저 저 아이를 축하해야만 하는 굴레를 뒤집어쓴 한 도파의 한낱 은거한 노인일 뿐인 것을.
“아, 신랑은 들어오면 안 되지.”
“돌아가요, 돌아가세요~.”
“신부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지금은 안 돼, 나리.”
문간이 떠들썩하다. 아마도 그 녀석이 들어오려다가 눈치 빠른 녀석들에게 제지당하는 소리일 것이다. 수완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들어오면서는 울 것 같은 웃음이 들었다면 이제는 실소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녀석의 체면을 위해선 식장에 들어가야겠지. 적어도 식장을 나올 때까지는 이 평정한 얼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얼굴로 모든 격정을 참아내야만 했다. 적어도, 갑자기 신부를 들쳐업고 뛰쳐나간다거나 하는 미친 짓거리는 벌여서는 안 된다. 침착해야 한다.
알고는 있었다. 알고말고. 천 년 연륜이 괜히 쌓인 줄 아느냐?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녀석과 주인 사이에 어떤 기류가 오고갔는지 이미 감사를 목적으로 나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지 않았던가? 알아서 할 일이지, 하고 심드렁하게 주인과 녀석 사이를 굳이 파려고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도검남사이다. 감사관이다. 그렇기에 이런 상념 따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군 그래?”
어떤 심정이냐고는 묻지 않는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신랑과의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인데 기쁨과 설렘 말고 다른 감정의 끝자락이라도 보일 거라면 이 결혼을 시작부터 반대했을 것이다. 그래, 감사관으로서 어떤 수단으로든 이 결혼을 훼방 놓고, 둘을 갈라놓으려고 애썼을 것이다. 꼬맹이 녀석. 분명히 주인을 행복하게 해줄 만한 능력은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런데 역시 속이 탄다. 신부 측에 앉아야 할지, 신랑 측에 앉아야 할지, 계산을 끝내놓고도 막상 직접 신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 잠깐 이쪽으로 좀 와 줄래?”
“주인 아씨께서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 겐가?”
“특별하게 할 말이 있어서.”
특별하게. 특별하게. 특별하게…. 저 특별하게, 라는 말이 귓가에서 요동친다.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지 못할 것이 뭐 있겠느냐. 시간정부의 명예를 걸고, 아니, 이제는 아니지. ‘네’ 명예를 걸고 이뤄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마는.
결국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간다. 단 한 번도 이토록 가까워져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그 입을 맞출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간다.
―――.
언제고 웃음기를 빼지 못했던 얼굴이 제멋대로 요동친다. 가만가만 속삭이듯 들려주는 단 세 마디의 말이 이렇게 달콤하고, 이렇게 악독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대로 몸이 굳고 만다. 하긴, 그 녀석만 휘어잡은 게 아니니 말이다.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으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고마운 게냐? 그으래, 거,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인다고 하진 않는다. 물건에서 태어난 말석의 신인 도검남사로서 일신의 주인이 가질 행복을 질투해 봐야 남는 것은 창조신께서 내릴 불벼락뿐이다.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만났더라면, 지금 이 말은 그 녀석이 듣고 있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 마련이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힘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사랑을 먹어야만 존재를 확정할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 신. 그런 신의 소원을 내치지 않는 ‘한 명’의 아이. 너는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행복해야만 한다.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봐, 나리. 언제까지 거기서 그러고 있을 거야? 다른 손들에게도 시간을 달라고.”
“아, 벌써 시간이 그리된 게야? 거, 인정머리 한번 없구만, 그래?”
“곧 결혼할 신부한테 헛소리 늘어놓은 건 아니지?”
“헛소리는 무슨, 떼잉. 내가 그리 할 일 없는 뒷방 늙은이로 보이느냐?”
“그럼 영감님은 다음 손님에게 자리를 내어주세요~”
축객 아닌 축객을 당하고 하객석으로 간다. 그래도 전 수장의 위치가 있으니 신랑 쪽으로 가서 앉는다, 만. 신부석에 이미 와서 앉아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부쩍 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말의 질투심일지도 몰랐다. 아름답게 깔려 있는 주단 위로 녀석을 지우고 나를, 나를 세워 본다. 베일 속의 그 아름다운 얼굴을, 환한 얼굴을, 행복에 겨운 얼굴을 독점할 자가 나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부질없는 상상이다.
‘주례는… 그렇군. 두지 않는 것인가.’
히나 녀석이 초청한 악단의 연주와 함께 식이 시작된다. 신부 측과 신랑 측에 고르게 앉아 있는 도검남사들을 차례로 훑어본다. 어지간히도 울었나 보군, 헤시키리 하세베…. 뭐, 실컷 울 수 있는 편이 속은 편하겠군. 그러면 첫 검이었던 카센 카네사다는….
함께 등을 맞대고 싸워보기도 한 동료들도, 함께 싸워보지 못한 동료들도 어쨌든 주인의 한 자루들이라는 자부심에 가득찬 검들이 여러 얼굴을 하고 주단의 끝을 바라본다. 흰 베일로 겹겹이 싼 얼굴은 아마도 태양보다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로 웃고 있겠지. 히나 녀석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수줍은 얼굴 가득하게 기쁨이 차오른 채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른다.
신랑과 신부의 행진 뒤로 고코타이가 드레스의 끝자락을 잡고 꽃에 폭 싸여서 들어온다. 그래, 화동은 처음 쳐낸 검이 하는 것이 맞겠지. 보기 좋구나.
인간의 아이와 신이 맺어지는 광경은 또렷하게 새겨진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위해 읊는 맹세도, 연약도 전부 기억한다.
이 이상은 가까이 가선 안 된다.
이 이상은 장난을 빙자해 가까움을 추구해선 안 된다.
이 이상은 하면 안 될 일이 너무나도 많구나.
아아, 참으로 슬프고 아름다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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