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으로 오세요.

 

불현듯 들리는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는 목소리를 따라서 발을 움직였다. 열기를 품은 작은 발자국이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목소리를 따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옷자락이 무거워졌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가 서 있었다. 그리고 는 나풀거리는 갈래치마를 풍성하게 두른 채, 그의 연미복 속 셔츠와 색깔을 맞춘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 두 분께서는 이제 미래를 서로의 손을 맞잡고 나아가시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

.

 

미심쩍은 이 자리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니, 미심쩍었지만 는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것만 같은 상대방이 대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조촐한 식이 끝나고 주례가 퇴장했다. 희미하게 알 것도 같은 상대는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는 갸우뚱 고개를 흔들고는 손을 맞잡았다. 그는 힘을 주지 않고 를 끌어당겼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이 품에 안겼다. 거역할 수 없는 힘, 거역할 수 없는 정중한 태도, 이 모든 것이 꿈 속의 남자에게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라.”

조금만.”

어나라.”

조금만 더.”

이제 일어나야지, 달링.”

 

달링, 이라는 호칭에 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품속에 가두고 부드럽게 깨우는 이는 진짜로 미래를 약속했던 이였다. -는 화들짝 놀란 것저럼 실크 가운이 벗겨지다 만 너른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아침부터 적극적인데. 오늘 일정은 없던 것으로 할까?”

 

정수리 위 20cm 쯤에서 울리는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까지도 그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 그렇지. 내 진짜 남편은 이 남자였지. -이 꿈의 여운까지 떨치고 일어나는 데는 채 몇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당신도.”

무슨 꿈을 그렇게 꾸길래 오랜만에 깊게 자는가 했다.”

무슨 꿈인지 알면, 글쎄.”

달링과 내 사이에 언노운할 것이라도?”

없긴 하지만. 진짜 말해도 돼?”

무엇이든 오케이.”

 

꿈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주례랑 나랑,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까지 해서 이렇게 세 명밖에 없었어. 하객도 없고, 새하얀 공간에 붉은 카펫만 길게 깔려 있고, 주례가 선 자리에도 주례석 같은 건 없이 정말 약식으로 조촐한 결혼식. 부케조차도 없는 그런 조용한 결혼식 있잖아. 꼭 도망쳐서 몰래 하는 것 같은, 로미오랑 줄리엣에 나올 것 같은.

 

달링이라고 부르던 남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래서, 미래를 함께할 거냐고 묻는데 순간 기분이 이상한 거야. 답하지 않으려고 뜸을 들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이 대답을 해버렸어.

 

이런.”

 

남자의 눈빛이 야생의 짐승이 가진 것처럼 거칠어졌다 이내 돌아왔다. 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흉흉한 빛이 감돌았던 눈은 자신의 아내를 보면서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그 분위기마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버렸어. 그게 전부야. 그러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데 당신이 날 깨웠고.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놈이야 혼마루에 몇이고 있을 수 있었다. 아내는 의 마음까지도 울렁거리게 할 만큼 빛나는 작은 태양이었으니까.

 

, 무슨 일이든 달링의 잘못은 아니군.”

 

꿈에 간섭할 만한 녀석이라면 역시 히메인가? 하지만 히메는 이렇게 비겁한 짓을 할 위인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꿈의 파수꾼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자신이 청혼할 때도 내키지 않아하고, 아내를 말리고, 여차하면 같이 도망가줄까-는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까지 했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기에.

 

형제라면 굳이 얼굴을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형제까지 좋아하는 것은 상정한 범위 내의 오차였다. 누가 보아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잘생긴 그의 형제, 도파의 수장이라면 얼굴을 감추고 몰래 꿈에 나타나 일을 벌일 좀스러운 위인은 아니었다.

 

그의 왼팔은. 글쎄, 관심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뚝뚝함의 화신이니 그렇다고 치고. 전 수장이야 속을 모를 양반이지만 역시나 이런 좀스러운 짓을 할 만한 신은 아니다. 저기 고양이는 애초에 간덩이가 붓지 않고서야.

 

그렇다면 이치몬지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건데. 어떤 미친 작자가 이딴 짓을 했는지, 두고 봐야 알겠지. 당분간 신경쓸 일이 생겼군 그래.’

 

남자는 아내의 왼쪽에서 보조를 맞추었다. 여차하면 발도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자기?”

?”

신경 쓰고 있죠?”

아무래도 그렇지.”

별 일 있겠어요.”

신은 신이다. 꿈에서 한 약속이라고 쉽게 물러주지는 않으니까.”

당신만 곁에 있으면 뭐든 다 괜찮아.”

 

아내는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그에게 안겨 온다. 옷의 절개된 부분의 맨가슴에 보드라운 뺨이 닿는다.

 

정말이지. 조회라도 취소해 버릴까.’

 

그는 열정을 담은 채로 제 아내를 마주 안았다.

어디선가 유독 흰 얼굴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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