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이번 시뮬레이션은 여기까지다.”
1부대 대장의 목소리와 함께 전투 시뮬레이션은 끝이 났다. 각종 상황에 대비해서 도검남사들의 연계전투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시뮬레이션은 마치 실제인 것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 적들과 조우하고, 온갖 환경에서 동료들과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전원 해산. 나머지 시간은 각자 알아서 보내도록 해.”
시뮬레이션 보고를 듣기 위해 전용 게이트로 나온 사니와는 전투 자료를 뽑아서 차트에 정리해 넣고는 해산을 명했다.
“특이 사항은 있었나요?”
“딱히 없었다.”
“그러면, 당신도 잠깐 쉬고 같이 나가요.”
“바라던 바지, 달링.”
찡긋, 전투를 마치고는 유독 사니와 곁에 다가오지 않는 그가 사랑을 담아 윙크를 날렸다.
한 세트에 열 번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은 때론 혹서의 환경을, 때론 혹한의 환경을 제공했다. 밤이 되기도 하고, 낮이 되기도 하고…. 어쨌거나 23세기의 기술이란 놀랍군, 그렇게 생각하며 도요 이치몬지는 뜨거운 물에 몸을 적셨다. 물을 맞아 착 가라앉은 머리카락의 먼지를 꼼꼼하게 털어내고, 살갗에 물드는 땀방울들도 하나 남지 않게 닦아냈다.
그의 몸집에 어울리게 커다란 수건 두 장으로 물기를 털어내고, 신년 데이트에 걸맞게 옷을 한 겹 한 겹 겹쳐입는 손길은 무엇 하나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깔끔한 동작이었다.
이치몬지의 브랜드 컬러인 동시에 아내의 생기넘치는 빛과 같은 붉은빛의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하나씩 잠근다. 그 위로 신년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능숙하게 맨다. 양말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종아리엔 가터벨트를 차고, 따뜻한 날에 어울리는 정장 바지를 입고, 같은 재질의 베스트를 입으며 마지막 단추는 잠그지 않는다. 멋들어지게 디자인된 회중시계를 베스트에 꽂아넣으며 시곗줄을 드리우고, 그 위에 재킷을 걸친다. 칼로 다듬어놓은 듯이 다림질된 재킷이 알맞은 길이로 딱 맞아떨어지고, 행커치프를 화려하게 접어 가슴에 꽂는다. 부산스럽게 뻗친 머리카락은 다듬어 넘기고 그에게 어울리면서도 아내가 깜박 넘어가는 향을 덧입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다시 반하고도 남을 만하군.
도요 이치몬지는 한껏 멋을 부린 공작새처럼 당당한 걸음걸이로 방을 나왔다.
“오늘도 주인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하셨나요?”
이마노츠루기.
“그, 주인님을 위해서, 무언가 준비했으니까…. 오늘 안에는 돌아오세요.”
고코타이.
“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냐.”
난센 이치몬지.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혼마루 경내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다른 도검남사들을 뒤로 하고 그는 별채로 향했다.
“허니―♪”
“왔어요?”
“오늘도 다름없이 뷰티풀해, 달링. …형제도 함께지?”
성야의 반지 사건 이후로 꼬박 사흘 밤이었다. 어쨌거나 새신랑에게 사흘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년 이상을 늘 함께 잠자리에 들던 버릇 덕분인지 딱 사흘 따로 잔 것이 너무나도 외롭게 느껴졌었다. 물론 사흘이 지나자마자 득달같이 침실을 합쳐 버리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세 사람이 하나가 되어버린 새해 첫날을 위해 특별히 예약한 식당으로 출발했다. 운전대는 그의 차지였다. 특별한 첫날을 위해 식당을 통째로 빌려 버리려던 그와 산쵸모였건만,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는 단란한 룸을 빌리자고 했었다. 그래도 사람들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나 뭐라나.
“도착했다.”
그래도 신년인데, 오늘따라 무척이나 한산하게 보이는 인기 레스토랑 주차장을 보며 아내는 갸우뚱했다.
“당신들 설마.”
산쵸모도, 도요 이치몬지도 이번만큼은 아내의 눈을 피했다.
“설마, 맞죠?”
그저 미소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아내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한다.
“이런저런 우연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니? 자, 가자꾸나.”
산쵸모가 부드럽게 주인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도요 이치몬지는 질세라 반대쪽에 서서 보조를 맞췄다. 이래선 길을 막고 있는 꼴이잖아요! 아내가 귀엽게 항변했지만 두 남자는 딱히 비킬 생각이 없었다. 사람이 오면 비켜줘도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서 오세요. 많이 추우시죠? 도요 이치몬지님 맞으실까요?”
레스토랑의 서버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만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일행을 맞이했다. 네, 맞아요. 짧은 대답에 연이어 그들은 자리로 안내받았다. 홀의 테이블은 싹 비어 있었고, 넓은 레스토랑에는 오로지 그들과 서버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사람의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복도 끝의 가장 호화로운 방에 안내받은 아내의 표정이 어딘가 미심쩍었다.
“….”
상석에 착석하고는 뭐라고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다물리는 아내의 입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두 도검남사는 눈빛을 교환했다.
“…당신들 설마.”
“하하, 일단 애피타이저부터, 즐기도록 할까.”
“입맛을 돋우면 미심쩍은 기분도 사라질 거다.”
수상한데. 눈썹 한쪽만 삐딱하게 올라갔던 아내는 아삭한 식감과 파릇한 샐러드의 맛을 음미했다. 각자의 몫으로 나온 가든 샐러드를 먹고, 고소하게 버터를 올려 구운 전복구이가 나왔다. 본성에서도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 순전히 인간인 사니와들을 위한 상점도 만방거리에는 많았다. - 특별한 날, 특별한 자리에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 잘 구워진 전복구이는 한 입 깨물어 먹는 순간 맑고 선명하게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나온 새우튀김도, 랍스터 회도, 여러 해산물도 무엇 하나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한 것이 없었다. 튀김옷은 얇고 바삭바삭한 데다가 새 기름으로 튀겨냈는지 예쁜 달걀노른자 색이었고, 랍스터 회는 쫄깃하고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해산물 접시에서 싱싱한 바다의 맛을 느낀 아내와 그들의 식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각종 요리들이 입맛을 돋우었다면, 이번에는 랍스터 버터구이를 선보이는 식당의 서버 뒤로 잘 차려입은 지배인까지 나와 인사를 했다.
“그럼, 나머지 시간도 좋은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아내의 눈길이 약간은 새초롬해졌다. 맛있는 음식으로 누그러졌던 성숙한 눈매가 뾰족한 새의 부리처럼 휘었다.
“화내지 않을 테니까 말해 봐요. …오늘, 여기 통째로 빌린 거죠?”
산쵸모와 도요 이치몬지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지. 작은 새의 눈길은 피할 수 없구나.”
“이런 식당이 이런 날 다른 예약이 없을 리가 없다구요.”
“내 고집이란다. 작은 새와 특별하게 맞는 첫 해잖니.”
“당신은 거든 거고?”
“핫하. 잡아떼고 싶지만, 솔직한 형제가 있으니…. 그랬지.”
“내가 못 살아….”
“이왕 온 것. 음식이 식기 전에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만.”
도요 이치몬지는 우선 자신 앞의 접시에서 랍스터 껍데기를 발라냈다. 마치 수십 수백 번은 해보았다는 듯한 솜씨였다. 그는 그렇게 발라낸 접시를 아내에게 주곤, 자신은 아내 앞의 접시를 가져와 새로 껍데기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솔직해서.”
아내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그제야 미심쩍다는 빛이 사라졌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빛이 감도는 뺨 아래로 생동감 넘치는 붉은빛이 벌어졌다. 고소한 향을 풍기는 흰 살점이 입속으로 들어가 사르르 녹았다.
맛있는 음식에 페어링된 화이트 와인을 머금는 앵두 같은 입술에 당장이라도 닿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간직하며 산쵸모와 도요 이치몬지도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볼까.”
운전대를 잡기로 했으니 단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던 도요 이치몬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옷시중을 드는 동안 산쵸모는 자신이 계획했던 식사를 마무리지었다.
식당에서 디저트까지 풀 코스를 즐기고 나온 사니와와 두 도검남사는 차를 몰아 혼마루로 돌아왔다. 다른 도검남사들의 청은 솔직히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내와 함께 달콤하게 보내고 싶었기에. 그러기엔 어느 숙소보다도 혼마루가 어울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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